대학에서 소위 법이란 것을 연구하고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일 당혹스런 말 중에 하나가 "준법투쟁"이란 것이다. 이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러한 말이 살아있을 만큼 정비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비감마저 금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얼마나 이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으면 법을 지키는 것을 투쟁방법으로 삼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선진국에는 없다는 신문 사회면이 있는 나라, 최고위 공무원에서 말단까지 독직 혐의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 이틀이 멀다하고 검찰이 엄포로 사법처리 운운하는 나라, 모든 사람이 "이 나라는 안돼."하면서 스스로 교통질서를 어기는 나라,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예의를 존중하고 본분을 잘 알던 민족이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는 점에 관하여는, 본래부터 민족성이 그렇다는 사람, 본디는 괜찮았지만 일제 침략기에 일본사람들이 다 버려놓았다는 사람, 최근 100여년간 외침과 전쟁을 겪다보니 각박해져서 그렇다는 사람, 경제개발로 인해 양반기질이 없어지고 성질만 급해졌다는 사람, 일제시대에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해서 국민들이 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사람, 정치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권연장을 통하여 축재 등 온갖 불법 내지 탈법행위를 일삼아왔기 때문이라는 사람 등 별별 사람들로부터 별별 의견이 다 있다. 이들 의견은 물론 상당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또 많은 사람들이 이로부터 해결책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법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위 의견들은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문제의 일 단면만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종래의 정치·경제·사회· 문화 그리고 현실이 법에 대한 경시풍조를 낳고 그로 인해 오늘과 같은 무질서 내지 잘못된 생각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잦은 외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음으로써 바르게 사는 것보다는 화를 입지 않고 오래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으며, 종래 나쁜 짓 하던 사람이 정당하게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직하게 법을 지키며 바르게 살아온 사람 위에 군림하여 굳이 법을 지키며 살아봤자 별 수 없다는 나쁜 가치관을 형성시켰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철학 내지 비젼이 없이 비정상적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자중하지 않고 과소비풍조를 조장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뿐 아니라, 수 차례 정치 및 경제파동으로 인하여 어떠한 富라도 하루아침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이 정치권의 난맥상과 결합하여 법에 대한 경시풍조를 낳았다는데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9차례에 걸친 헌법의 개정경과에서 알 수 있듯이, 법에 대한 정치가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주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법을 고친다라고 할 때에는 "改正"이라는 말을 쓰는데, 왜 "바를 正"을 쓰느냐 하면 이는 법을 바른 방향으로 고치고 개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즉 법을 개정한다고 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들을 더 행복하고 더 잘살게 하는 방향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동안의 헌법 개정을 보면 그 단어에 부합하는 "개정"이 정말 몇 차례나 있었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 놓았으니,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안위가 안중에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권력을 잡고, 한 푼이라도 더 긁어모아보자 하는 것이 아니었겠나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가들이 법을 바로 만들 리가 없다. 바른 법을 만들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풍조도 있는 것 같다. 소위 "二律背反"이란 이런 때에 쓰는 말이다. 이러니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배우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이 못났기 때문이라는 자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확증적으로 가르쳐주는 말로 "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것이 있다. 수년 전 어떤 범죄 혐의자가 발악하듯 한 이 말은 우리 나라 사법조직의 실상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실로 우리 나라의 법원과 검찰, 경찰은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실망스런 모습만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전 정권교체기에 검찰총장이 보여주었던 변신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까지도 주었으며, 오늘의 검찰은 어떤 범법사건은 너무나도 철저히 조사하여 서슬이 퍼런 모습을 보이면서도 어떤 사건은 "수사계획이 없다."든가 "누구누구 까지만 수사하겠다."고 하여 검찰이 수사하는 범법과 그렇지 않은 범법은 무엇이 다른가하는 생각을 국민들이 하도록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국민의 뜻에 따른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 나라의 사법기관들의 처벌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를리 없다. 결국 국민들로서는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며, 자연 법이란 것은 필요한 때에는 이용하지만, 거추장스러울 때에는 헌신짝 내버리듯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풍조 아래에서 법을 지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도 지키지 않고, 너도 지키지 않는다. 물론 그도, 그녀도 지키지 않는다. 왜? 아무도 지키지 않으니까. 그러다 처벌을 받으면, 내가 법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또는 표적수사에 걸려서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법을 어겨서 처벌받는 사람이 더욱 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와서 우리 나라에 법을 바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법을 바로 아는 사람이 정치도 하고, 사업도 하고, 관리도 되어야 이 나라가 바로 잡힌다고 믿는 것이다. 법이란 어느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국민들을 위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어떤 공무원보고 당신이 희생하여 이 나라를 바로잡도록 해라하고 요구할 수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법을 바로 이해하는 날에 비로소 이 나라에 진정한 법치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법대로 하겠다."하고 겁을 주는 괴상한 협박을 하는 모습이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