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속담에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다 (A good lawyer is a bad neighbor.)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 말을 한 켠으로 생각해보면 참으로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로 법률가는 법의 준수를 대원칙으로 하여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철칙으로 생활하게 마련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적용될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생활을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 법을 어길 경우에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자기 자신이 배타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범위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법은 생활지침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도 이웃이 있을 것이다. 담장을 같이하고 사는 통상적 의미의 이웃은 물론, 자주 만나는 친구에서부터 일문제로 만나는 사람 또는 어쩌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옆에 서는 사람이 모두 이웃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법률가의 이웃이 될 때에는 이 이웃은 여러가지로 신경쓸 일이 많게 된다. 법률가는 법이 규정한 만큼만 타인에게 양보할 뿐 아니라, 타인이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법률가에게 법이 허용하는 이상의 피해를 입히면, 그 법률가는 "법적으로" 대응을 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서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라 마당가에 나무가 몇 그루 서있다. 그런데 워낙 대지가 협소하다 보니까 나무가지가 처마밑까지 진출한 것은 물론, 앞집의 경계선을 넘어간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 뒷집에서도 나무가 우리 뒷뜰로 넘어와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남의 집 나뭇가지가 넘어오면 나뭇잎이 모여서 수월찮게 쓰레기를 양산할 뿐 아니라 햇볕도 막아버리고 해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앞에서 본 좋은 법률가라면 아마 민법상의 相隣關係에 관한 규정에서, 담장을 넘어온 나뭇가지는 그 주인에게 잘라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만약 그 요구를 듣지 않으면 임의로 잘라버릴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고, 그 즉시 이를 시행하려고 들 것이다. 이 때 그 이웃이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 요구를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속으로라도 꽤 불평을 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이웃간의 관계가 상당히 악화될 수도 있다. 이웃사촌이 아니라 이웃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법을 신봉하는 법률가가 진정으로 좋은 법률가인가라는데 있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서양 사람들은 어쩌면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어쩐지 우리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 자신이 법학을 하는 사람임에도 그러하다. 법을 좀 안다고 나서서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생각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태권도 초단"에 버금간다고도 할 수 있겠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결국 이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 충실히 익지 않은 곡식이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가 더 높나, 하늘이 더 높나 하는 꼴이다.
   나도 아직 법학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많지 않으나,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개개의 법조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실정법 보다 더 높은 규범이 있게 마련이며, 그러한 초실정법적 규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타당하다. 아무리 독재로 악명높은 정권하에서라도 이러한 규범은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다. 잠시잠깐 부인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규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하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어렴풋이 인간에 대한 사랑, 공동체 내에서 서로 존경하며 살아가는 것,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고, 남과 나를 차별하지 않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법률가들은 이러한 초실정법적 규범은 한갖 철학적 또는 윤리적 관념이라고 생각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법제에는 그러한 규범은 내재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법제내에도 이러한 사상은 얼마든지 감지된다. 감지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법체계가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민법, 형법을 비롯하여 상법이나 소송법 등에서도 어느 하나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있는가. 전체로서의 법의 가르침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자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 자신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의 권리가 있으며, 결국 서로 존경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작은 일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과 치고박고 싸우라고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좋은 법률가는 좋은 이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