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따스한 시선을

    나는 예전부터 묘한 징크스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싫어하는 것은 꼭 그것이 내 것이 되거나,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만다는 것이다. 일례로 요즘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너무 모양이 이상해서, 저런 차는 절대로 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운명의 장난에 의해 나는 지금 그 차를 10년째 타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어느새 내 차가 되고 보니 전에 보듯 그렇게 이상한 차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인데, 내 것이 되어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예가 있지만, 이걸 다 털어놓는다면 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 같아서 다 얘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런데 로스쿨 문제는 오늘 좀 얘기를 하여야겠다. 사실 로스쿨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본 것은 아니지만, 피상적으로는 나도 반대론자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단 법률가를 키우는 것이 굳이 이러한 시스템에서 해야 하는 일인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대륙법계 성문법 국가니까 로스쿨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굳이 대학원 체제로 하여야 할 필요성, 많은 양의 공부를 3년 안에 실무까지 포함하여 다한다는 것의 가능성 내지 필요성과 같은 것만 해도 로스쿨의 성공을 회의적으로 보게 하는 요소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즘 로스쿨에 파묻혀 사는 나 자신을 살펴보면서 왜 로스쿨이 이 시대의 대안이 되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굳이 그 얘기를 해보라면, 워낙 기존의 법률가 선발제도가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법대를 나오지 않은 법률가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법대를 다녔더라도 실제 공부는 대학에서가 아니라 학원에서 하고, 그나마 소수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강의실과는 무관하게 고시반에서 거의 독학으로 공부해서 법률가가 되는 시스템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법률가에 있어 피상적인 법조문과 대법원 판례만 보이고, 사법연수원에서 배운 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선발”이 아니라, “양성”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법률가에게 체계적인 법이론을 전수하여 법기술자가 아닌 법전문가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게 한다는 취지에 비추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선택을 하면서, 기존의 교육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새로운 틀로 제시한 것이 로스쿨이었다고 한다면 나만의 억측인지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사법개혁의 여러 축이 작용하였을 것이고, 거기에는 법률가의 수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온갖 시련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로스쿨이 개원도 하기 전에 온갖 내우외환에 흔들리고 있음을 보면서, 능력도 많이 모자라는 내가 어쩌다가 로스쿨을 방어하는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한탄스러울 때도 있다. 매스컴은 시도 때도 없이 로스쿨 들어가도 반드시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거나, 로스쿨 나와 봤자 별 수 없다더라고 우리와 한참 다른 일본의 제도를 갖다가 나발을 불고, 어디서는 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도 연수를 받지 않으면 변호사등록을 못해 주겠다고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더니, 학비가 비싸다고 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이제는 로스쿨 준비에 수 천만 원이 든다고 재를 뿌리고 다닌다.
    이런 로스쿨에 대한 집중포화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단적으로 보아 로스쿨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학생들 다수가 도로 사법시험이나 직장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적성시험과 로스쿨 지원율이 예상을 깨고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뿐이면 말을 않는다. 다른 학교들은 정원을 뺏어가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고, 학교 안에서는 쟤네들 학교 예산도 다 쓰고 교수 정원도 다 갖고 가서 피해가 막심하다며 공공의 적으로 삼고 있다. 거기다가 법학부 학생들은 대학이 온 정신을 로스쿨에 팔고 있어서 자신들을 소홀히 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까지 생각하면,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따로 없다.
    물론, 로스쿨을 유치하고 설립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것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그분들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의 로스쿨은 없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어렵고 힘든 일에 더 신경이 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일일까, 정말 그들이 말하듯이 이것이 옳은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불행하게도 또한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이미 대세는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로스쿨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되어버렸다.
    나는 정말 주제넘게도 여러분들에게 감히 묻는다. 이제는 이 로스쿨의 흐름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면 이도 결국은 우리 것이 아니냐고. 이제는 문제가 있으니 깎아내리자고 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은 고치고 보듬어주어야 할 우리의 일부가 아니냐고.
    처음부터 로스쿨이 정말 완벽한 제도였다면 누구라도 뭐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로스쿨의 본토인 미국에서도 이에 대한 적지 않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또한 사실이고 보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걱정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오늘도 한밤중까지 로스쿨이라는 업무에 매달려 날밤을 지새는 많은 대학들이 있고, 얼마 남지 않은 개원을 앞두고 강의준비에 여념이 없는 교수님들이 있다. 거기다가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하여 정말 목을 매고 있는 수많은 수험생들이 있고, 그 뒤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학부모가 있다.
    이제는 로스쿨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줄 때다.(2008. 10. 30자, 한국로-스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