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사법개혁의 열풍이 거세게 분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느냐 할 정도로 그 문제에 대하여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한때는 우리나라의 법학계와 법조계를 뒤흔들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현재의 법조의 실상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반성에서 출발한 이 움직임은 결국 사법시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종국적으로는 법학교육제도에 대한 비판과 개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논의되던 몇 가지 문제를 생각나는대로 들어보면, 주로 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률서비스의 개선문제,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의 적정수, 법조인의 선발과 양성방법 등의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의 법률서비스 내지 법조관행의 문제는 사실 심각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서 본래 사법개혁의 발단이 되었던 문제이다. 법원이나 검찰, 심지어는 변호사사무실조차도 일반인에게는 오를 수 없는 아성으로 군림하고 있어서,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별천지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재판을 받으려고 해도 높은 비용, 장기의 시간, 위압적인 고자세 등 문제가 아닌 것이 없었으므로, 일반 국민들은 권리의 침해가 있어도 이를 법조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소송사회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정도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의 법률서비스의 수준은 국민을 법조로부터 쫓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서비스"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법조 내에서 권리침해를 받은 경우, 이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국민은 그러면 안되지만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조차도 보이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은 사건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할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건수는 많으니 자연 불친절해지게 되고, 또 비용의 문제도 생기며, 시간도 오래끌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는 전혀 잘못된 점이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인구비례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제소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 입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당연히 사람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많다면서 짜증을 내던 법조는 사람을 늘리자는 대책에 대하여 두 팔을 걷어부치고 반대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이는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이들은 사법개혁에 관한 얘기를 하는 곳이면 누구라도 내 보내서 발표, 토론, 질문을 하게 했는데, 그 요지는 누가 언제 어디서 말하든 대략 다음과 같았다.
   첫째, 법조인을 많이 뽑으면 법률가의 질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100명을 뽑으면 1등에서 100등까지 합격하지만, 200명을 뽑으면 1등에서 200등까지 합격하므로, 숫자가 100명 늘어나면 떨어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합격하게 되므로 당연히 합격점수는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률서비스란 것이 그렇게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을 정도의 고난도의 것인가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법률서비스 가운데는 고품질의 서비스가 요구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런 서비스는 凡人이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건은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오히려 많은 것은 단순한 사건들이다. 법률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라면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법률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은 법률서비스의 차원에서 본다면 방치되어 있다. 가령 요즈음 집을 한 채 사고 판다면 적어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오가는 계약이 된다. 이는 적어도 서민들에 있어서는 전재산이며, 자기의 평생이 걸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에 우리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계약이 잘못 되어 돈이라도 날리게 된다면 전재산 아니 자기의 평생이 날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에 대하여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는 복덕방 아니면 공인중개사로부터 협조를 받아 계약을 하고있는 것이다. 요컨대 법률가라고 해서 수재들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법률가들이 하는 말은, 이미 우리나라에는 변호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변호사가 너무 많아서 이미 사무실도 유지 못하는 변호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이렇게 되면 사건도 안될 것을 부추켜서 사건화하는 변호사가 생기게 되고, 법률브로커가 날뛰게 되어 오히려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변호사수가는 하방경직성이 있어서 변호사가 많아진다고 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에 대하여도 반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사무실을 유지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생각된다. 이는 결코 남이 못되는 것을 보고 기분좋아하는 놀부심뽀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이는 변호사직역의 확장의 기회로 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의 변호사들은 극히 일부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訟務만을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착각도 대단한 착각이다. 의사의 일이 병난 환자 치료에 그치지 않고, 병걸리지 않게 예방하는데도 있듯이, 변호사도 이미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에도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앞에서 말한 수천만원짜리 계약은 당연히 변호사의 업무범위에 들어있어야 한다. 비단 그런 일 뿐만 아니라, 변호사가 법원 앞에 사무실을 두고 사건당사자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면 그 변호사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주택가, 관청가, 상가에 사무실을 두고 사건을 찾아다녀야 한다. 진정한 법률서비스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송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변호사가 오히려 브로커를 이용하고 사건도 아닌 것을 부추켜 소송을 하게 하는 위법, 탈법을 조장하고 마는 것이다. 이 사회를 찾아보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사무실을 유지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굶는 변호사까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진정한 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단언컨대 우리나라의 변호사수는 아직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많이 모자란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보수에 있어서도 탄력성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에, 대형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의 보수는 별론, 기초적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들의 보수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총인구나 GNP에 비하여 사건수가 대단히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이들 사건들만 보더라도 액수가 적은 사건은 거의 본인소송에 의하여 처리되고 있다. 변호사들이 경제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상담하러 오면 그 옆의 법무사사무실이나 가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에 대하여 법무사가 소송서류를 작성해 주는 그 이상의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히 위법 내지 탈법적인 것이다. 변호사는 이제 더이상 귀족이 아니다. 그들이 눈을 낮출 때, 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사법개혁에 있어서의 또하나의 주제이자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등장하였던 문제가 소위 법조인 선발제도의 개선문제였다. 현재의 제도는 사법시험이라는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고, 그 이외의 사항은 전혀 통제되어있지 않음으로 해서, 법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도 시험에만 합격하면 얼마든지 판사나 검사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법대와 사법시험의 관계를 잘라버린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된 일이나, 이는 학력에 의한 국민차별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였던 것 같다. 사실 드물게 법대를 다니지 않은 사람, 심지어는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면서, 그 입지전적 인물의 성공에 대하여 박수를 보내지 않는 국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졸업전에 하는 소위 재학중합격은 수재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일류대학들에 사법시험 바람이 불면서 공부에 조금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모두 사법시험열풍에 빠져버렸다는데 있다. 법대, 비법대를 막론하고 강의나 진지한 공부와는 상관없이 모두 수험생이 되어 오로지 고시원, 산사에서 시험준비를 하여 합격한다는 사실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몇몇 인품이 훌륭한 분들을 제외하면, 법대 교수를 존경하는 법조인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강의를 듣고 그 도움을 받아 시험에 합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을 얘기함에 있어서 너무 현학적.철학적 연구에 전념한 학자들의 책임이 전혀없다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대학에서 오로지 졸업장만 받아간 사람들이 진정한 법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지 못한채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진정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하는데 있다. 법은 온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조인은 국민과 함께 숨쉬고, 국민과 함께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까지 죽자고 대학입시만 준비하다가,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시험준비에만 매달려 단기간에 교과서만 달달 외워 시험을 본 사람이 그 법이라는 거대한 실체 속에 숨어있는 수천년의 수많은 법학자의 고뇌를 알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조인은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소위 선발방법의 개선이 논의되었으나, 추진세력의 미숙함과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정치권의 몰이해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나마 몇가지 문제는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전관예우문제, 선발인원의 증원 등이었다. 그나마도 최근에 변협에서 선발인원의 증가를 재고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이기심은 정말 감당이 안된다.(200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