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법(法)이라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까? 잘 알다시피 영어로는 law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Recht, 프랑스어로는 droit라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로 Lex라는 이름을 만난다. 어원을 살펴보면 그 경로는 조금 다르나, 궁극적으로는 바르다, 옳다라는 것에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들 사람들에 있어서 법이라는 것은 옳고, 바른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자를 쓰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모두 법이라고 하기 때문에 먼저 이 글자부터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法자를 破字하면 물 수(水)와 갈 거(去)로 된다고 하여 법을 물 흐르듯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꿈보다 해몽이 좋은 해석일 뿐,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이는 본래의 법字가 너무 복잡하여 간단하게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고, 물 흐르듯이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본래의 법字는 두꺼운 옥편이 아니면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복잡한 글자이다. 그 모양은 옆에 있는 것과 같다. 여기를 보면 요즈음 우리가 보지 못하던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해태 치字이다. 바로 동양에서는 법의 상징으로 되어있는 동물이다.
    이 동물이 왜 법의 상징으로 되었는가 하면, 동양에서는 법은 바로 刑, 즉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동양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바로 법이었고, 따라서 죄를 지은 자를 골라내어 벌을 주는 일은 아주 큰 일에 속했다. 과학적 수사를 한다는 요즈음도 죄인인가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옛날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마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 죄 없이 처벌받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래의 중국에는 죄인을 골라내는 신성한 동물이 있다고 여겨졌다. 해치, 해천, 신양, 식죄, 해타 등으로도 불리는 이 동물은 신선들만 먹는 멀구슬나무의 잎을 먹고 살며, 그 모양은 소머리 말상에 외뿔이 나있고 양 발톱으로 온몸에 푸른 비늘이 나있다고 하거나, 전체적으로 외뿔이 난 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이 동물은 죄를 지은 사람을 구별하여 그를 뿔로 받거나, 그가 손을 대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의 전통적 법정에는 해태상이 있었으며, 관복에도 해태의 그림을 수놓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동양에서 법이라 하는 것은 서양의 경우와 같이 옳다, 바르다라고 하는 점도 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정치적 내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전통적인 법개념 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같은 한자어라도 법 범(範)이나 근본 본(本)과 같은 글자는 상당히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서양식의 법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 세상의 바른 이치, 모범, 따라야 할 것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법이라고 하는 것도 제도적 의미의 법이 아니라, 예컨대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할 때에는 이들과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례는 서양문물이 도입되면서 인권의식이 도입되고 오로지 국가나 관청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 개인을 위한 권리의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동양과 서양에서 이와같이 법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법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은 동서양 사이에 많은 차이를 초래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법은 바른 것이고 옳은 것이므로 그 법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 만약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손해가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잘못뿐 아니라 남이 잘못하면 이를 바로바로 시정시키는 인식이 사회 밑바탕에서부터 깔려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고발정신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법은 아주 불편한 것이다. 법은 나를 속박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는 지키지 않을 수 있으면 지키지 않는 것이 좋다. 항상 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손해일 뿐 아니라, 남에게도 손해를 준다. 때문에 법을 어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쩌다 적발되면 "운이 없어 그런 것"이므로 이 사람은 동정을 받는다. 만약 이 사람을 엄벌해야 합니다라고 했다가는 당장 "너는 부모 형제도 없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구만", "너는 얼마나 잘 지키나 보자"류의 비난에 못살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풍조 때문에 희한하게도 이 나라에서는 피해자만 병신이 된다. 거기다가 "오죽했으면 당했겠어"류의 조소 내지 비난이 쏟아지지 않았으면 그 피해자는 운수가 좋은 사람이다.
    이러다보니 사법직무를 가진 공무원들은 아주 우스운 사람들이 되어 있다. 처벌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관용해야 할 것인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선지 몰라도, 얼마 전 아는 분이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해서 경찰관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는 이 순경이 보이는 태도가 걸작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지레 자기는 폭행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자기가 보니 맞은 것 같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피해자는 당일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응급치료까지 받았고 며칠 후까지 이빨이 흔들리고 얼굴에 부어 있는 상황인데도 자기는 맞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변까지 했다. 그러면서 아마 피해자가 잘못했을 거라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소위 법을 지킨다는 경찰관까지 이런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경찰관이 "그 정도 가지고 뭐 그러느냐, 참지."라고 피해자를 윽박질러도 한국 사람들은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미국 같은 나라에서 경찰관이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이 경찰은 옷을 벗거나, 최소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다. 법을 수호하는 경찰은 바로 법이고, 그런 점에서 법은 법을 지키는 자의 편이어야지, 법을 지키지 않고 어기는 자의 편이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법의 집행은 엄격하다. 자칫 법을 어겼다가는 총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 선진국이다. 대단한 법위반이 아니라도 경찰관은 법이고, 위반자는 위법자(outlaw)이므로, 설사 총을 맞아도 경찰관에게 책임추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가해하거나,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았을 경우, 그 비난은 감당할 수 없고, 처벌도 받아야 한다. 왜냐, 그것은 법은 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법字에서 바른(正) 요소인 해태가 빠졌다고 하더라도, 동양의 법이, 아니 한국의 법이 지금 같은 한 국민들은 법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