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와 몰염치(沒廉恥)

    벌써 지난달의 일이니 철지난 일이라고 치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라에 높은 지위에서 큰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퇴하는 것을 보면서, 염치란 말을 떠올렸던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라에서 필요로 하고,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사소한 허물은 덮어주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잘못이 덮일 수 없는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나라의 일에 저해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마냥 흘려 넘길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전에도 직권남용이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이 문제된 경우가 없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이런 문제가 그냥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면 그 판단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근신하여야 할 것인데, 큰 욕심을 내다가 기존의 지위를 잃는데 그치지 않고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수년 전에 이런 일을 몸소 겪은 어떤 이는 그 후 선거에 출마도 하고, 심지어 인터뷰까지 하면서 청문회가 어떻다고 하는 것도 보았는데, 무슨 배포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정도는 되어야 국정을 논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인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떤 코미디 프로에서는 그런 비리가 있어도 총리나 장관과 같이 높은 자리는 안 되고, 그 밑에 낮은 공무원은 되느냐고 질타를 하던데, 일견 일리가 있는 의문일 것이다. 인사청문회에 나와 큰 코를 다친 분들이 막상 그전에 다른 공무원을 할 때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당연히 이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 아래의 공무원이라고 해서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즉 어떤 계기에 의해 적발이 되기 전에는 그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 서민들의 경우에도 같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매일같이 신상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한두 가지의 문제가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고, 간이 조금씩 커졌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염치는 없어진다.
    우리가 걱정하는 바는 이런 몰염치는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것이 소위 지도층만의 문제냐 하는 것이다. 그분들은 어느 정도 지도층으로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스스로를 시민이나 서민으로 부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캐보면 이런 위법사실을 가지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 이웃 중에서도 과연 위장전입을 한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또 형편이 조금만 된다면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필요도 없는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이 전혀 없을까. 이런 사람들은 청문회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왜 그러냐고 했을까, 아니면 저런 사람이 왜 나왔냐고 비난했을까. 자신의 허물이 별 것 아니라고 해도 문제지만, 허물이 있는 이가 남의 허물을 가지고 비난했다면, 이도 또한 몰염치의 전형이 된다.
    결국 이러한 몰염치는 처음부터 큰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높은 자리에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 이런 것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당연시되는 일이다. 우리는 해방 후 나라의 기틀을 되세우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구한말 외세에 의한 혼란이나 일본에 의한 폭정(暴政)과 전쟁 외에도 여러 차례의 정치적 급변 등을 겪으면서, 목숨을 유지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나가는 법만 배워도 다행스런 시대를 몸으로 헤쳐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의 고난을 되뇌기만 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한 역경을 헤치고 우리가 세계에서 그래도 남들이 어느 정도는 부러워하는 성장을 이루었다면, 지도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그에 걸맞은 도덕적 바탕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자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 지적하는 몰염치를 가지고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사회에서 지도자급의 선진국이 되는데 기여할 수는 없다. 선진국은 돈이 많은 부자나라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도덕적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2010. 09. 14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