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얼마 전에 잠시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우리말로 하면 완행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버스는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큰길에서 골목길로, 이리저리 젊은 사람과 노인들을 태우고 달렸습니다. 한 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비를 만 원 정도 냈습니다. 환율을 감안하더라도 완행버스에 적지 않은 차비를 내면서 배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내릴 때 요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는데, 버스가 서면, 사람들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사에게 와서 요금을 내고 내립니다. 넋을 놓고 있다가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그때서야 “내립니다!”하고 종종걸음으로 쫓아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액권이나 버스카드가 있는 사람이야 기계에 통과시키든지 아니면 운전사에게 보여주면 그만이지만, 현금을 내는 사람은 일일이 잔돈을 맞추어서 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차 안에서 잔돈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액수를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기계에서 환전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꽤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야 손이 빠르지만, 손발도 둔하고 눈까지 어두운 노인들의 경우에는 한동안 버스를 세워놓게 되지요.
    그래도 운전사나 승객들 중 어느 누구도 재촉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히 걸리는 시간이므로 감수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 버스가 서기 전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면서 요금도 내고 그러면 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버스 안에는 차가 운행 중에는 위험하니까 다니지 말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러니 차가 선 후에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서도 거의 정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아마 버스 시간표도 그런 것을 다 감안해서 짜놓은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면 어떻습니까. 안내방송을 들어보면, “미리 준비해서 안전하게 내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리 준비하자면, 차가 주행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야 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하다면,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지요.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차가 정류장에 서기 전에 문 앞에서 기다리라는 뜻 같은데, 그러자면 안전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실제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버스 안에서 넘어져서 다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지역의 버스를 타면 버스가 선 뒤에 나오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미리 기다렸다가 부리나케 내리지 않으면 눈총을 받거나 욕을 먹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버스가 폭발해서 승객이 다치는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환경을 살린다고 우리 고장에서도 운행 중인 버스에 고압 가스통을 싣고 다니면서도 안전검사 기준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 버스에 실려 있었던 가스통이 그냥 폭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불이 붙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상가나 자동차들까지도 피해를 입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겠지요. 그런데다 외국과는 달리 가스통을 차량의 아랫부분에 싣도록 해서 위험성이 더 높아졌는데, 그 이 가 차량 가격을 낮추기 위해 버스 제조회사가 주장한 것을 받아준 것이라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버스를 타면, 자리가 비어 있어도 가운데 부분은 비워놓고 버스 앞이나 뒤로 몰린다지요.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기는 했지만, 가스통을 피하고 싶으니까요.
    결국 이런 것들은 모두 설마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 사고가 날까.” “지금까지도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 그러면서, 시간 좀 앞당기고, 돈 얼마 아끼는 쪽으로 결정을 해버립니다. 사고가 나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 있을 수 없지만, 결국은 안전보다는 시간, 그리고 경제가 항상 우선이라는 생각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 시간도 중요하고, 또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일을 하자면 경제성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안전이 한 번 무너지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지 모릅니다. 돈은 또 얼마나 들겠습니까. 처음부터 사람 위주로, 안전 제일주의로 시작하면, 결국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설마는 반드시 사람 잡습니다!”(2010. 08. 17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