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보여주세요.

    요즘처럼 세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릴 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접하는 과목들 중에서 바른생활, 도덕, 윤리과목 같은 것은 옳고 그름을 배우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목 이름은 달랐어도 점수 받기는 어렵지 않았지요. 적어도 시험문제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기만 하면 쉽사리 풀렸습니다. 물론 내가 반드시 그대로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일단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없었지요.
    물론 거기에는 예외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불법적으로 식민 지배를 한 것이나, 독도문제 같은 것은 그들이 뭐라고 하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네들도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 자손들에게 부끄러웠을 것이고, 또 이익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다보니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억지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괘씸하기는 해도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도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법에서도 사람의 진심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행위에 의해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결과만으로 제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행위자의 의사가 어떠했는가가 문제됩니다. 목적범이라고 해서, 특정한 목적을 가진 범법행위만 처벌하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또한 진의(眞意)와 표시가 다를 때에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진의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결과 위증죄와 같은 것은 실제 사실이 어떠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증인이 자신이 경험한 것과 다르게 말하면 설사 그것이 진실과 부합한다고 해도 죄가 됩니다. 때문에 사람의 진심을 밝히는 어려운 일이 법적으로는 꼭 필요한 일이 됩니다.
    이렇듯 분명하게 돌아가던 세상이 요즘은 도대체 구별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참 분명했습니다. 북한의 인공기나 북한 사람들을 사진으로라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꽤 나이가 들고 난 후의 일이었는데, 그때 어떤 이들은 왜 북한 공산당원들이 우리와 똑같이 생겼느냐 하고 물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무엇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안함 문제와 같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사실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법 그럴 듯합니다. 또 4대강 사업 얘기도 들어보면 찬반양론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권에 대한 평가, 정책에 대한 의견 중에는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모양입니다. 거기다가 지방색까지도 더해지고, 또 크고 작은 이해관계까지 연결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버립니다. 야당의 지지자가 정권을 비판하고, 여당의 지지자가 야당 정책을 비난하는 것 정도는 말하는 사람의 성향을 감안해서 들으면 됩니다. 그러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에는 사실이 그러한지, 아니면 자신의 입장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범부(凡夫)라면 또 모르겠는데, 어떤 경우에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도 정말 양심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무척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어떤 사람의 어떤 의견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적(端的)으로 인터넷 댓글들은 자신의 입장과 같은 사람의 글인가 아닌가가 문제이지,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 전문성을 가진 글인가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서 내놓은 의견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면 한마디로 매도(罵倒)해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이라는 곳이 정말 유용한 정보보다는 무책임하고 값싼 선동성 글로 넘쳐납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인터넷 실명제라는 강수를 두었겠습니까.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양심을 가지지도 못하고 그 양심을 표현하지도 못한다면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이를 공격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전체주의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허용할 수 있지만,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다양성 있는 사회는 언제쯤 오게 될까요.(2010. 07. 14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