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사회

    요즘 들어 확성기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사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몇 주 전에는 학교 부근에서 슈퍼마켓이 하나 개업을 했는지 며칠 동안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요란스럽게 굴었는데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 소리는 컸지만 적어도 하루 종일 그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학생들까지 대동제 행사를 한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틀다가 또 무슨 장기자랑을 하는지 학교를 들썩였다. 그런데 그 소리가 보통 큰 것이 아니어서 수업시간에 애먼 학생들 잡아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학생이 할 일이 아니라고 잔소리를 좀 하고 말았다.
    게다가 지방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와서 선거운동을 하는 소음까지 가세하고 보니, 하루 종일 소음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으로 되고 말았다. 물론 출마한 분들이야 한정된 시간에 자신을 부각시켜서 주민들이 표를 찍어주도록 해야 하니 마음이 바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목소리는 커지고 확성기의 볼륨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확성기의 난무 속에서 피해를 입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교실에서는 수업에 지장을 받고, 사무실에서는 회의를 할 수 없다. 가정집에서는 아기를 재울 수 없고, 가게에서는 손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게 된다. 자연히 말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게 되지만, 육성으로는 아무리 해봤자 확성기를 따라갈 수 없다. 그나마 강의실에는 강의용 확성기가 있지만, 실외에서 양껏 볼륨을 올린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심할 때에는 강의를 멈추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도 싱긋이 웃는다. 말은 않지만, 기가 차다는 뜻이다.
    시민들에 의해 선택되어 내 고장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이 선거과정에서조차 시민을 무시하는 이런 행태는 만약 이 사람이 당선되어 공직에 올랐을 때 어떻게 일할지를 뻔히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선거운동 할 때 간이나 쓸개까지 다 내줄 것처럼 굽실거려도 당선되고 나면 입을 싹 닦는다는 세상이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후보의 선거사무소 앞은 차로가 두 개인 도로인데, 한동안 선거운동차량을 불법으로 주차해놓아서 차로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꼭 그 앞에서 병목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며칠 후 한 시민이 참다못해 차를 좀 빼라고 했더니, 그 후보라는 사람이 선거운동 중에는 선거차량은 주차위반이 되지 않는다고 대꾸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선거차량이 아무데나 세워도 주차위반이 안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위반인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라 주민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기 일만 하겠다는 사람이 주민의 대표가 될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다. 그래서 이런 후보는 이름을 외워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만은 찍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주주의의 최대 덕목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전제군주국가나 귀족사회는 사람에게 신분이 있고 그래서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 위에 군림한다. 신분이 낮은 천민은 귀족들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유 없이 목숨까지 빼앗기는 일도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있어도, 권력이 강해도, 돈이 많아도 그것이 특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없고, 피해를 입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가해자는 배상을 하거나 기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법적, 금전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왜 타인에 대한 침해가 허용되지 않는지를 생각해보면 감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이 말은 안 하니까, 내가 그보다는 좀 힘이 세니까 남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근본을 좀먹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2010. 05. 27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