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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며칠 전에 시청인지 구청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TV 뉴스 말미에 공사로 인해 불편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며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얘기를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두리봉 터널이라고 하는 조그만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 내부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청소를 한다고 한 개 차로를 막는다는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라는 것이었다. 그걸 듣고 아마 청소하는 사람들도 그 시간에 출퇴근을 하나 보다라고 했다.
    요즘은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으니 다들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낮에 길을 막고 공사하는 모습을 좀체 볼 수 없다. 길이 부서졌다거나 다시 길을 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비교적 간단한 재포장 공사나 청소 같은 것은 사람들이 덜 다니는 새벽시간대에 한다. 그러니 어제만 해도 울퉁불퉁하던 길이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포장이 깨끗하게 되어 있다거나, 어수선하던 곳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면 대개 공통적인 것이다.
    새벽시간에 이렇게 공사를 하는 것은 물론 주민불편을 최소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는 통행량이 적기 때문에 교통의 방해를 덜 받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밤중에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할 터, 인건비가 배는 더 비싸고 가외로 조명이나 기타 설비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더 들어간다고도 했다. 그래도 낮에 길을 막을 수는 없으니, 밤에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밤에 공사를 하기도 하고, 또 부득이 길을 막더라도 최소한으로 막아서 주민들이 덜 불편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주민자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단체장을 중앙에서 임명하고, 자치의회도 없던 시절에는 그저 공무원은 말만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일뿐, 실제는 군림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뭘 한 가지를 하려고 해도 상전 모시듯 해야 했고,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불분명해서 공무원과의 친소관계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관공서 드나들 일이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과 면을 트려고 관변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 보통일 정도였다.
    그런데 단체장을 주민이 뽑고, 자치의회가 구성되면서 얘기가 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선거로 뽑힌 단체장들이나 의원들이 공무원들을 다그쳤는지, 요즘 관공서 드나드는 분들 얘기는 최소한 옛날같이 겁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민원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상냥해지고, 옛날에는 얼굴을 모르면 어렵던 일들도 쉽게 되는 경우가 많고, 어떤 때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처리되는 일들도 많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부분에서 모자라는 점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욕심이 과해서가 아니다. 앞의 터널 얘기에서 보듯이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들이 무신경하게 벌어지는 것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시간대에 출퇴근하면서 청소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지하철 공사를 한다고 길을 막아놓았는데, 차로가 한 개 반이 막혀있다. 아마 공사허가를 할 때는 차로를 한 개면 한 개, 두 개면 두 개 막도록 했을 텐데, 이렇게 한 것은 한 개만 막고 공사하도록 했지만, 건설회사에서 슬그머니 표시판을 조금 더 내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때문에 러시아워에는 물론, 평상시에도 상습 정체지역이 되어 버린 것을 보면서, 저건 누가 한 번 나와 보고 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달포가 되어도 그대로다.
    대학에서 법을 가르칠 때 길을 가다가 보도블록 튀어나온 것에 걸려 넘어져서 다친 사람이 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사례 중의 하나로 얘기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시청이나 구청 같은 곳에 관청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를 전담하는 공무원이 별도로 있을 정도이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정말, 말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주민을 섬기는 단체장과 의원들이 뽑혔으면 좋겠다.(2010. 05. 19자 경남도민일보 도민춘추, 2010. 5. 24자 중부매일신문, 2010. 5. 26자 강원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