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하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문화재 중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서책들의 반환 문제가 지지부진인 것은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총 340여권을 약탈해갔는데, 당시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나머지 6000여권의 책은 불태워졌다고 한다. 귀중한 서책을 불태운 것도 모자라 강제로 빼앗아간 문화재를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께 이렇게 문화재를 약탈당한 22개의 나라들이 모여 국제공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고 하니 그 귀추가 기대된다.
    프랑스가 돌려주지 않고 있는 서책 중 191종 297권은 의궤(儀軌)라고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중요한 행사를 하게 되면 이를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그 내용을 기록하여 정리하여 의궤를 편찬하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만 해도 규장각에 546종 2,940책,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287종 490책 등 그 양이 엄청나다. 그 외에 프랑스가 약탈해간 것뿐만 아니라 일본 등에 유출되어 있는 것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양의 의궤가 있는데, 이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의궤는 같은 유교문화권이라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지에는 아직 이런 기록이 발견된 적이 없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당시의 중요한 의식(儀式)들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마치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유교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를 통해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고증자료로서 더 이상 완전한 것이 없다.
    말하자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국가적으로 중대사가 있게 되면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빠짐없이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는데, 이런 기록을 남길 정도로 준비하자면 그 과정은 또 얼마나 철저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철저한 계획과 준비는 또 과거의 기록을 통하여 물샐틈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고, 무리 없이 원만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러한 매뉴얼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심지어 천안함 사고가 났을 때 실종자들 가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거나, 심지어 누군가가 전화로 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건국 이후만 하더라도 6.25 사변을 비롯하여, 월남전 파병 그리고 중동 파병까지 우리 군인들이 고귀한 희생을 한 예가 적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사무적인 통지서 한 통, 전화 한 통으로 연락을 하고 말았다는 건지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목숨까지 바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고귀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단순히 국립묘지 안장이나 유족연금, 국가유공자 대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본인이나 유가족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접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우리 가족의 희생을 이렇게 감사하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도록.
    국민 누구라도 당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일들이 안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준비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지나친 억측일까. 의궤까지 만들던 나라에서 언젠가부터 일들이 즉흥적으로 행해지고, 그러다보니 원칙도 없고 두서가 없어지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일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누가 하느냐 언제 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모습이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다 자신의 욕심을 슬쩍 끼워 넣는 일까지도 생긴다.
    곧 또 지자체 선거가 실시될 텐데, 그러면 많은 수의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바뀌게 될 것이고, 그 전에 하던 일들은 모두 폐기되고 새로운 사업들을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그 과정에 낭비되는 세금은 또 얼마나 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억울하게 될지, 분란은 얼마나 생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모두들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은 우리가 최근 너무 원칙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시스템이 일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돈을 절약하며, 쓸 데 없는 분란을 줄이는 첩경이다. 사회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한 이유다.(2010. 04. 15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