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사회와 규범

    내가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은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에서 살고 있지만, 아파트는 나에게 있어 살고 싶고, 가지고 싶은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법을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아파트라는 물건의 재산권이 모호했는데, 이 정도 고가의 물건이면 적어도 반영구적인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의 아파트 치고 5, 60년을 넘어가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겨우 몇 평방미터의 좁은 땅뿐인데, 이것은 결코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아파트를 기피한 이유는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아파트에 살게 되면 마음대로 집에서 뛰어놀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어쩌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사는 아파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보면 아이들이 조금만 콩콩거리고 다녀도 그 집 주인은 질색을 하는데, 그렇게 아이들을 단속하자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숨도 한 번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좋은 지역에 있는 합리적인 주택을 마련해서 정말 잘 살다가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어, 할 수 없이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일단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아이들이 다 커서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면서 이제 소음문제로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앞으로 이사하여야 할 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다시 단독주택을 마련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독주택은 정말 팔기 어렵고, 또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으로 살아본 아파트는 이 정도라면 괜찮다고 할 만큼 쾌적했다. 처음 달포 동안은 바깥이 좀 어질어질했고, 또 창밖이 허공이어서 나무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상한 광경이 좀 어색했지만 곧 나아졌다. 주차하기도 편하고, 보안도 만족할 만큼 되어, 참 좋은 곳에 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한 동안을 살았다.
    그런데 1여년이 지난 후 상황이 급변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바로 위층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고 다른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이사 온 그날부터 쉬지 않고 소음을 내서 사람을 못 살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무엇을 하는지 쿠릉쾅쾅 천정이 요동을 쳐서 할 수 없이 보안실에 항의를 했다. 30분 간격으로 세 번을 얘기했는데, 그 후에야 좀 조용해져서 겨우 잠을 잤다.
    다음 날 집사람에게 들어보니 보안실에서는 이런 항의를 해도 보통은 그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사람들이 보안실에서 하는 말을 통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어서 경비원들이 전화해봤자 욕만 먹을 것이 뻔해서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층간 소음 때문에 싸워도 보통은 시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래층 사람들이 못 견디고 이사 가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집에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암담했는데, 퇴근 후 집사람이 하는 얘기가 위층 아기 엄마가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 남편이 늦게 퇴근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까지 피해를 주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주의를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정신이 바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사까지는 안 가도 되겠다 하면서 비로소 안도를 하였다. 그 후에도 자주 아이들이 쿵쿵거려 할 일을 못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위층 아이들이 그럴 때면 쉬는 시간으로 여기고 잠시 일을 멈춘다.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 같은 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 쫓겨날 수도 있다. 심지어 저녁 9시 이후에는 빨래도 못하게 한다. 공동체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밑의 사람이 어떻게 되든 애들 기죽인다고 통제를 하지 않는데, 이는 결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별해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커서 도덕도 법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한 삶을 살 수 없다. (2010. 04. 04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