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얼마 전에 나온 보도 중에 서울에 있는 모 유명대학이 상대평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것이 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학교에서 성적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에 절대평가 내지 상대평가라고 하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한다면 상대평가는 전체 학생들 중에서 등수에 따라 비율로 수우미양가 내지는 ABCDF를 주는 방법이고, 절대평가는 분포에 상관없이 점수만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방법이다. 학생수 50명인 반에서 90점 이상의 성적을 받은 학생이 30명 나왔다고 할 때, 절대평가를 하면 그 30명 모두 수 또는 A를 받을 수 있지만,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그 중에서 정해진 인원수만 수 또는 A를 받게 되고 나머지는 우 또는 B 이하의 학점을 받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상대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점은 교수의 재량에 의해 주어진다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옛날 대학교수 중에는 A는 전혀 주지 않는다거나 겨우 40여명 되는 학생들 중에서 10여명 이상에게 F를 주어 원성을 사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교수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A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떤 교수는 학점이 후하고, 어떤 교수는 학점이 짜다고 해서 학점 잘 주는 교수를 찾아다니다가 지도교수에게 대중없이 수강한다고 야단맞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의 대학들을 살펴보면 절대평가는 외국어 강좌라거나 인원수가 적은 과목 등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하고, 일반적인 과목은 상대평가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 따라서는 교수가 상대평가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대학들이 상대평가를 강행하는 것은 소위 학점 인플레라는 것 때문인데,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졸업생들의 취업이 힘들어지자 취직시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 학생들이 학점을 올려달라고 한 것에 교수들이 부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에 비해 훨씬 많은 학생들이 좋은 학점을 받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후 기업들이 이러한 학점 인플레에 따라 기준을 올려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그 전과 마찬가지로 되어버렸고, 대학만 학점 뻥튀기를 한다고 비난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개의 교수들 중에는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시달리지 않게 되어 좋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그 자체로 평가하는 절대평가가 교육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교육적인 환경이 허락한다면 절대평가를 선호한다. 상대평가라고 해봤자 결국은 한 반 학생들 사이에서만 경쟁을 시켜 거기서 구분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그 학생의 절대적인 실력을 나타낸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력만 뒷받침된다면 한 반 학생 전원이 A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실력이 안 된다면 전원이 F를 받아야 사회에서 그 학점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에 학점 때문에 찾아온 어떤 학생은 자기 실력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학점을 올려준다고 해서 교수에게 무슨 손해가 있는가라고 항의를 해서 황당했던 적도 있다.
    문제는 상대평가인가 절대평가인가가 아니라, 어떤 평가방법이 더 공정하게 학생들의 실력을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평가는 일단 평가자가 공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야겠지만, 이 평가를 사회가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더라도 평가방법은 정착할 수 없게 되고 만다. 흔들리는 평가기준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게 되고, 이는 또 제도의 뿌리를 흔들고 만다.
    이러한 것은 피겨스케이팅이나 체조와 같은 운동경기에서 심판들이 채점하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심판에 따라서 선수에 대한 평가점수가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은 보통이고, 이때 점수에 불만이 생겨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채점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정상 판정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개는 다소 편파적인 판정이 있어도 그대로 넘어간다. 그것이 오히려 제도적으로 공정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교나 스포츠계가 아니라도 객관적 점수가 아닌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평가를 하는 경우는 많다.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해서 개인적인 이해(利害)에 따라 점수를 조작하는 것은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엄한 불이익을 주어야겠지만, 공정하지 못하다는 근거도 없는데도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무조건 비난만 하고보는 것도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2010. 02. 22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