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의 기준인가

    우리나라 말 중에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은 꽤 자주 혼동되어 사용된다. 빨간 사과와 파란 사과는 다르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틀리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좀 따져서 말하자면 빨간색과 파란색은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으니, 또한 어느 것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우리 모두가 아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것을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하는 것은 외국에는 그 예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서양 쪽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고, 동양에서는 일본 정도이다. 일본 사람들도 가끔 다르다고 해야 할 것에 틀리다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언어학을 연구하지 않는 처지에서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를 깊이 따져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한 가지 점만 짚어야겠다. 그것은 우리의 자기 위주 사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파악한다. 자신의 키가 가장 표준이고, 자신의 몸무게가 가장 편안한 상태이며, 자신이 사는 곳이 가장 통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라고 생활하는 환경이 다 각각이고, 또 하는 일이며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정상이다. 다행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얘기를 한다면 좋겠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직접 대면을 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게 되는 경우에도 같은 문제가 생긴다. 화기애애하게 함께 밥 먹던 사람들이 주먹질을 하게 되고, 인터넷에 욕설 섞인 댓글을 달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단지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세종시 얘기에 빗대 보면, 원안을 고수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원안이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면서, 수정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의를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수정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효율적인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행정기관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장래를 위해 잘못된 약속은 수정되어야 하고, 무조건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들을 외고집으로 치부한다. 그런데 이러한 충돌은 단순히 논란에 그치지 않고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한다면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국가나 지역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큰 문제로 된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대화와 타협에 있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며, 또 상대방의 생각을 받아들여 양보를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도 긴요하고,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지지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일단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내 논리가 더 우수하니까, 내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은 자신의 아집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처음에 반대의견을 가졌던 상대방이 내 의견을 찬성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의견도 틀린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옳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의견의 합치를 위해서는 양보가 필요하고, 우월한 지위에 서있는 사람일수록 타협을 위해 큰 양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보탠다면, 경쟁상대와의 다툼에 몰두하느라 이 장에 끼지 못한 소수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옳다 틀리다의 논쟁에도 끼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히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2010. 02. 04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