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십니까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특별한 곳이다. 오로지 서울만이 “특별”시이고, 다른 지역의 도시들은 기껏해야 광역시라고 한다. 전에는 직할시라고 했었지만, 광역시라고 하건 직할시라고 하건 특별시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특별이라는 이름은 오로지 서울에만 적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누구에겐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제주특별자치도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전에는 서울 사람들이 서울 이외의 모든 지역을 시골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산이나 대구, 광주를 비롯해서 지방에도 꽤 큰 도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들을 모두 싸잡아서 시골이라고 하다니.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은 농사짓는 벌판이나 바닷가, 또는 산으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동네를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어릴 때 교과서에 나온 시골의 모습은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다 그랬다.
    그러던 것이 일 때문에 서울에 갔다 왔다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무언가 서울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저녁때 기차에서 내려 역사 밖으로 나와서 본 내 고장의 모습은 서울과는 판이하였던 것이다. 서울과 비교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래도 제법 높은 건물도 있고, 길도 훤히 뚫려 있고, 사람들도 적지 아니 다니는 곳이어서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도, 서울에서 눈을 버려서 그런지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후에 점차 알게 된 것은 거의 모든 점이라 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면에서 지방은 서울과 다르고, 그러한 격차는 절대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러한 것이 대학에까지 적용되어 모든 대학이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학으로 구분되어, 지방대학은 아무리 잘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람에게까지 적용되어, 서울 사람과 시골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까지 하는 것 같다. 그 실례로, 대한민국에서 최고 엘리트들만으로 구성된 법관들조차도 지방에 근무하는 이들은 따로 향판(鄕判)이라고 부른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골 판사라는 것이다. 서울 지역에서 주로 근무하고, 승진할 때 잠시 지방에 내려왔다 돌아가는 경판(京判)에 비하면 향판은 특정직급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극히 어렵다.
    이러니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나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곳이 모두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데, 이 속담이 만들어진 옛날에 이미 오늘날의 사정을 예견한 것일까. 어쨌든 서울에는 돈도 많고 사람도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점에서 서울은 특별하다. 요즘은 여기에 정보까지 보태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걸 그래프로 그리면 중절모자 모양이 나올 것이다. 한가운데 있는 서울만 볼록하고 다른 지방은 바닥에 붙어 평평한 것이 지금 서울과 지방의 실태다. 그러니 서울에 살아야 취직도 되고, 문화도 누릴 수 있고, 정보도 가진다. 지방에서는 백날 해봐야 못 듣고, 못 보고 사는 것이다. 시골 사람 말은 듣는 사람도 없다. 목 아프게 의견을 얘기해봤자, 간단하게 무시해버린다.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많은 집권자들이 서울 집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실정이다. 과포화 상태인 뚱뚱보 도시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 서울의 문제는 나라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서울이 아니라, 수도권의 문제로 넓어지고, 이제는 충청지역까지 수도권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지방의 모습은 더욱 앙상해지고, 핏기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도 모이면 다 서울로 빨려나가고 지방은 서울에 먹을거리와 생활용품이나 공급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참에 서울에 있는 것들을 좀 지방에 나눠주면 어떨까, 누군가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지방에 살면 공기도 좋고, 같은 돈으로 더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텐데. 이런 순진한 생각에 서울 사람들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되받고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길가면서도 스마트폰을 통해서 메일도 주고받고 주식도 팔고 사는 세상에서, 한 자리에 모여 일하지 않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렇게 변명할 것이 없을까. 그럴수록 시골에 사는 사람은 슬퍼진다.
(전국지방 5개사 공동칼럼 2010. 1.19자 강원도민일보, 2010. 1. 20자 광주매일신문,  2010. 1. 20 자 경남도민일보, 2010. 1. 22자 중부매일, 블로그 http://blog.naver.com/kanghong5882/10078824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