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질서는 국민만의 책임일까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이 주인인 사회라고 하여 우리는 시민의 주인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준법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회의 기틀이 무너지기 때문에, 그 사회가 얼마나 잘 유지되는가 하는 것은 그 사회의 규율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법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규범들은 주인인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므로 스스로 만들어놓고 지키지 않으면 이율배반(二律背反)으로 된다고까지 한다. 여기서 사회를 국가로 바꾸고, 시민을 국민으로 대치해도 그 내용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쨌든 국민이나 시민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법을 지키지 않는데 대한 비난이나 책임은 모두 이들, 아니 우리들에게로 돌아온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아직 선진국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7천 달러 내외에 머물고 있지만, 새해에는 다시 2만 달러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 선진국들로만 구성된다고 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가입국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 중의 선진국들만 가입한다는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라면 당연히 선진국이라고 해야 할 텐데, 아직도 우리 주위를 보면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머리를 흔들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 욕심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실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에 가보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무지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엊그제 큰 눈으로 우리 고장도 몸살을 앓았지만, 선진국 국민들은 눈이 오면 열일을 제쳐놓고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한다. 눈을 치우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만약 누가 자기 집 앞에서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다 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부 자원봉사자나 군인, 공무원만 눈을 치운다고 끙끙대는 우리의 모습과는 눈 온 날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선진국의 공무원들은 큰길의 눈만 치우지, 가게 앞이나 주택 앞의 눈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단 눈뿐 아니라 자기 집 뜰의 잔디 같은 것도 정기적으로 잘라주지 않으면 시청에서 과태료를 물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매스컴에서는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는다고 시민의식 운운 하면서 그걸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물론 도덕적으로야 스스로 자기 집 앞의 눈 정도를 스스로 치우게 되면 안 그래도 폭설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을 도와주게 되고, 자기 주변의 환경도 깨끗해지므로 스스로도 기분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법 쪽으로 가지고 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선진국이든 아니든 사실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사실 법을 지키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진국 국민이라 해도 자발적으로 법을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집 앞의 잔디나 눈 같은 문제까지도 일일이 법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고, 단속이나 처벌이 무서워서 법을 지킨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이라도 법적 손길이 미치지 않는 뒷골목이나 시골로 가면 질서가 문란한 곳도 많고, 아무리 법을 잘 지키지 않는 나라의 국민도 법이 엄격한 나라에 가면 조심해서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순수하게 도덕적인 문제야 어떤 방법으로든 시민들에게 자발적으로 하게 하도록 계도할 수밖에 없다. 도덕을 위반했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는 이를 얼마나 잘 지키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얼마나 이를 잘 지키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무슨 강조기간을 정하여 그때만 반짝 단속하고 보통 때에는 위반해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면 단속된 사람은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잘못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아무리 사소한 법위반이라도 예외 없이 제재가 따라온다면 감히 법을 위반하려고 생각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선거도 있어서 아마 공권력이 국민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지만, 그럴수록 법의 권위는 떨어지고 국민의 생활은 불편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질서와 관계없고 국민을 괴롭히기만 하는 과도한 단속도 문제이지만, 법위반을 보고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결코 잘하는 것이 아니다.(2010. 01. 07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