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위태롭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가정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던 것 같다. 요즘 부모에 대한 효도만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적 감정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이미 신라시대에 세속오계 중에 부모를 지극히 섬겨야 한다는 얘기(事親以孝)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을 꼭 유교적인 문제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중국에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삼강오륜에도 부모와 자식 간의 친근함(父子有親)과, 부부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야 함(夫婦有別)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음은 이 사회에 있어서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법적으로 보는 것은 반드시 적절하지는 않지만, 민법은 가족이 혼인과 출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혼인을 해야 자식을 낳을 수 있고, 사람이 출생을 해야 혼인을 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어느 쪽이 가족을 형성하는데 더 본질적이고도 기본적인 것인가를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또한 민법은 혼인과 출생에 의해서 구성되는 본질적인 가족 외에도,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도 생계를 함께하는 경우에는 가족의 범주에 넣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것이 며느리나 사위, 장인장모나 시부모, 시동생이나 처남처제 등인데, 이들 중에는 과거 대가족제 속에서도 가족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어서 현대사회의 달라진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보면 과거의 대가족제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되었고, 부모와 자녀를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제라는 것도 꼭 그런가 싶게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우리 주변에 보인다. 누구는 교육 때문에, 누구는 일 때문에, 또 누구는 건강 때문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족이 흩어지는 모습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꼭 노인이 아니라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져서 시장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작은 포장제품이 넘쳐난다고 한다.
    이렇게 가족의 모습이 변했다고 해서 가족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주는 것도 가족이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낌없이 손을 내미는 것도 또한 가족이다. 가족 사이에는 이해관계도 없고 계산의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족은 그야말로 공동사회(Gemeinschaft)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굳이 노후에 봉양을 받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신을 키워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받은 것이 열(10)이라고 해서 열(10)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도, 자식이 부모에게 보답할 때에도 자기의 형편에 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잘 살 때 잘 키워줬으니 후에 형편이 어려워졌더라도 앞에 준 것만큼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 가족 간의 사리이다. 여기에는 원금도 없고 이자도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법은 가족을 특별히 취급하고 있다. 가족의 범주를 좀 더 넓힌 것이 친족인데 가족이나 친족에게는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 재산관리인 등이 되어 뒤를 돌봐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친족관계에 잘못이 있을 때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소를 제기하거나 친족회원으로서 후견인과 같은 사람이 일을 바로 하도록 통제할 수도 있다. 형사법적으로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거나 증거를 없애버려도 죄를 면제하기도 하며, 증언을 거부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또한 가족이나 친족 상호간에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서는 죄를 면제하거나 감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해한 경우 등에는 남들 사이의 경우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엊그제 연이어 나온 뉴스에는 부모를 살해한 자식의 얘기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옛날에는 그런 범죄가 생기면 집을 뜯어 그 자리에 못을 파고, 그 고을을 강등하기도 하였다고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오죽하면 자녀가 부모를 죽이겠냐며 그런 경우는 대개 부모가 더 나쁘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번 뉴스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랫사람도 아닌데, 부모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흉기를 휘두른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가정이 유지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모래성이 되고 만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부부 사이에 온전한 가족의식이 절실한 때다.(2009. 11. 26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