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에 교육을 생각한다

    금년의 수능은 비교적 따뜻한 가운데 치러질 전망이라고 한다. 조금 추워질 것이라는 예보도 있지만 예년과 같이 평상시 따뜻하던 날씨가 시험일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매서운 한파로 몰아치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학 본고사가 있던 시절부터, 대학입학 예비고사가 있던 때에도 예외 없이 전국적으로 대학입시를 보는 날은 이렇게 한파가 수험생들을 괴롭혔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입학의 실정을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능력보다는 지연과 학연과 같은 연고주의의 힘이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 작은 기업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윗사람은 자기 사람을 모아서 힘을 키우려고 하고, 아랫사람은 자신을 키워줄 수 있는 사람 밑에 모이려고 한다. 그러려니 이미 정해져 있는 출신지역은 어쩔 수 없지만, 좋은 대학을 가서 힘 있는 집단 속에 편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능력은 있지만 학벌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 소위 출세라고 하는 것을 하려면 얼마나 큰 힘이 들고 좌절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관심은 자기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가에 쏠려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두세 살만 되면 숫자를 가르치고 글자를 가르치려 든다. 유치원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고 이미 초등학생들이 홀로 외국에서 유학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소위 국제중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를 나와야 특목고에 가기 쉽고, 그래야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좋은 대학 타령하는 것은 이러한 부모들에 있어서는 뒷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수준이다. 이러한 교육열이 바탕이 되어 향상된 국민의 지식수준이 자원도 별로 없는 작은 나라를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력을 가지도록 성장시킨 것은 아마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이정도의 교육열을 가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유교사상이 바탕이 됨으로써 소위 관존민비의 사상이 지배하게 되어, 선비계급을 중심으로 한 식자(識者)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과열되어, 조선 말기에는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이 전 국민의 70%가 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해방 후 신분에 의한 차별이 없어지자 믿을 것은 교육밖에 없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교육받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온 국민들이 교육에 매달리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열은 기본적으로는 탓할 이유가 없으나, 문제는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황폐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언제나 빼놓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교육개혁의 문제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그 중에는 문제가 있는 정책도 일부 있었으나 바람직한 정책도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 거의 없다. 정책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틈을 뚫고 가려는 노력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사교육시장에서는 또 그대로 어디서든 자신의 아이들만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으로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되고 조금 있다 보면 부작용만 속출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한때 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무지 많이 공부하는 줄 알았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학교수업을 마치고도 한밤중까지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바람에 학생들은 잠만 모자라게 되어, 학교수업시간에도 졸고, 학원에서는 학교 숙제하고 떠들다 보면 실속 있는 공부시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떤 이는 옛날 학원도 잘 없던 시절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서 보충하던 때보다 결코 많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이들은 성과도 없는 사교육시장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고,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엄청난 금전적 낭비까지도 감수하고 있다는 것으로 된다.
    공부를 많이 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 잘못된 제도 하에서 잘못된 공부방법으로 내모는 상황이 문제라면,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2009. 11. 12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