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발견한 희망

    그저께 아침 출근하는 길이었습니다. 평소보다 10여분 늦게 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길이 무척 혼잡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워에는 몇 분 차이로 길이 막히기 때문에 5분 늦게 출발하면 도착은 20분 이상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평소보다 조금 늦겠다고 하면서 길을 갔습니다.
    신천시장 쪽에서 청구네거리에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했을 때 이미 좌회전 차들이 꼬리를 물고 국채보상공원 쪽에서 오는 차들의 진로를 막고 있었습니다. 많은 차량이 동신교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양인데, 이 상황이라면 MBC 쪽에서 오는 차들이 신호를 받아 네거리를 막으면 한동안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오늘 한참 많이 늦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초록불이 켜졌을 때 네거리는 비워져 있었습니다. 아직 동신교 쪽으로 가는 차량들은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MBC 쪽에서 오는 차량들이 초록색 직진신호를 받고서도 네거리에 진입하지 않고 정지선에서 정체가 풀리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분명하게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손쉽게 네거리를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천3치안센터를 지나 대구은행 앞에 도착했을 때 신천역 네거리의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그곳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비록 신호는 초록색이었지만 그 뒤에 갖다 붙이면 반대편 차들이 좌회전을 못하게 되거나, 신천3동 쪽에서 오는 차량들이 막히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정지선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뒤차에게 다소간 욕먹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보통은 좌회전 신호 뒤에 노란 신호가 켜지면 아직 초록 불이 켜지기 전인데도 빨리 출발하라고 경음기를 울리는 차를 많이 본 터였기에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어 도착한 다음 차는 제 옆에 멈춰 섰고, 그 뒤차도 다시 그 옆 차로에 멈춰 섰습니다. 제 뒤에 따라온 차도 제 뒤에 멈춰 서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어느 차도 초록 불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도 오른쪽에서 오는 차들도 자신들의 신호에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우리는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막상 그 다음 신호를 받았을 때 앞의 차들이 많이 빠져나가 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막힘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출근하면서 저는 무지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침에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희망의 불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정말 마음 같아서는 차를 내려서 운전자들의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참 잘했어요.”라고 말이지요. 이런 분들이 대구에 있는 한 대구에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사실 정체되어 있는 네거리에 진입하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24조제4항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먼저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진행신호만 받으면 전후사정은 보지 않고 들어가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경찰이 있으면 좀 나아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십중팔구는 대개 엉켜서 누구도 지나가지 못하게 되지요. 이러한 것은 대개 민도가 높은 선진국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후진국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아침의 일은 참으로 기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좌회전 신호대기를 하는 차량들이 좌회전 신호기를 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본래 신호기는 교차로 30미터 앞에서부터 다 돌아갈 때까지 켜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에는 좌회전 직전에 잠시 켜거나, 아니면 아예 켜지 않는 차도 많았었는데, 최근에는 많은 차량들이 신호기를 켜고 있어서 참 바람직한 변화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교통질서를 보면 고쳐야 할 점도 많습니다. 진행하고 있는 차량 사이를 무리하게 비집어 들어가는 끼어들기,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을 하거나 좌회전 차로에서 직진을 하는 등 차로를 지키지 않는 경우, 아무데서나 틈만 보이면 유턴을 서슴지 않는 차량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차량에게도 위협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사건은 대구에서 작게나마 희망의 불꽃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이며, 앞으로 더욱 좋아지리라는 것을 믿게 하였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더욱 많아져서 대구의 길거리가 짜증이 아니라,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행복의 길이 되기를 바라봅니다.(2009. 10. 29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