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절에...

    언제까지나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던 불볕더위도 이젠 한풀 꺾이고 보니, 내일모레면 추석입니다. 아직 경기도 살아나지 않아 살기도 참 팍팍합니다만, 그래도 명절이 오니 마음은 푸근해지는 것 같습니다. 옛날 같으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송편도 빚고 전도 부치느라 온 집안이 들썩였겠습니다마는, 세월이 변하다보니 그런 재미도 별로 느낄 수 없어,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명절이 주말과 겹치다보니 귀성하시는 분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모두들 기분 좋게 명절을 쇠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과 함께 추석이 가장 큰 명절이니만큼,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나면 못 본 사이에 지내던 얘기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푸짐한 명절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겠지요. 그런데 이 기회를 빌어 우리 대구와 경북을 좀 생각하시라고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고장은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하면 참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구석이라도 모자람이 없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적어도 우리 고장이 최고라는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치의 중심이라고 하기도 어렵게 되었고, 교육도시라는 명성도 쇠락하고 있습니다. 산업이라는 것은 볼 것이 없고, 문화시설은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시대의 변화 때문도 아니고,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가 잘 못 해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대구나 경북보다 인구도 적고 별 것 없었던 도시들이 이제는 모든 점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명절에 다른 고장으로 가시는 분들은 그 곳에서 문제를 풀어보시고, 먼 곳에서 가족들이 온다면 이분들에게 해답을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상 외로 가까운 곳에 답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리 한 가지만 힌트를 드린다면 우리 고장에 만연하고 있는 정치를 몰아내는 것이 제일 우선적인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거도 하지 말고 정치 이야기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생활 속의 정치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 한반도의 정치는 우리 고장의 입김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그렇지 않아 보이는 고려조에 있어서도 그 중심축의 한 부분은 경주 출신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해방 이후에는 그야말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이 대통령이 되어 문자 그대로 실질적 수도의 역할까지도 감당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앞뒷집에 살던 이나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뉴스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출세를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시기도 하게 되지요. 그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장관이다 뭐다 해서 출세는 했지만, 사실은 그 친구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입장에서는 “나도 한 번...”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장관은 못되더라도 동네에서, 내 직장에서 감투라도 써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그런 마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너무 심해서 일상적으로 되다 못해 본업을 넘어서는 일까지도 생겼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입니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사람을 모으고 반대편을 적대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므로,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힘 있는 사람에게 빌붙어서 편히 지내자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은 발붙일 구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일꾼인데도 말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평소에는 잠재해 있다가, 어떤 계기로 과열되다보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모함하게 되고 없는 얘기도 만들어 욕을 하게 되는 경우까지 생기고 맙니다. 반면에 자기편 사람은 아무리 허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말지요. 이렇게 된다면 진정으로 나라나 고장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같은 편이 없어서 모두들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육상경기대회를 비롯하여 큰일도 많습니다. 그보다도 먼저 우리 고장의 경제를 끌어올리는 것도 큰일이지요. 일은 산더미인데, 일 할 사람들을 모두 숨어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일꾼이 누군지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마 이 글을 보고 가슴이 찔리는 사람이 몇 있겠지요. 한가위 명절이 내 고장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2009. 10. 1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