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라고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법이 성문법과 불문법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앞의 정권에서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소위 불문헌법 사건 때문이다. 당시에는 수도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것이 헌법이 다룰 사항인가 하는 것과 아울러, 서울이 불문헌법상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온 나라가 술렁였다. 헌법학자들은 당시 탄핵사태와 더불어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헌법 교과서가 100페이지는 더 늘어났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관습헌법은 관습법으로 규정되는 헌법이라는 말이니, 다른 법에도 관습법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른바 죄형법정주의가 적용되는 형사법을 제외하고 대개 관습법의 존재가 인정되어 있다. 비록 우리나라가 성문법을 중심으로 하는 성문법 국가이기는 해도, 국회가 제정하고 대통령이 공포하는 성문 법률이 아닌 불문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법에 대해서 잘 모르던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실 법을 공부해보면 성문법 보다는 불문법이 더 법의 본질에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되는데, 본래 법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국민이 직접 토론을 해서 법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아 법을 만드는 권한을 이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주인이 직접 만든 불문법과 국민들을 대신해서 머슴이 만든 성문법은 어느 것이 더 정당성을 가지는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문법이 법의 현장에 그다지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성문법주의 원칙 때문인데, 그것은 성문법은 정해진 법적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엇이 법인지 분명하고, 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의 모든 법률영역에 법이 다 만들어져서 불문법이 들어갈 틈이 거의 없게 되었다는데 있다. 거꾸로 말하면 성문법주의 국가에서 굳이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법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도 없거니와, 국민들이 법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의견이 구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라는 것이 관습헌법으로 정해진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본 것과 같이 관습법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불문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국가가 그것을 법으로 승인한 때 만들어진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 의견은 국가가 바로 법을 만들면 되지 왜 불문법을 법으로 승인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의 의식이 특정 사항을 법으로 인식하는 수준에 도달하였을 때 비로소 불문법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쪽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입장에 의하면 어떤 사실이 모여 많은 사람이 따라 하는 관행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상당히 고착화되면 관습이 되는데, 그 관습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받아들여져서 이제는 법과 마찬가지라고 인식될 정도가 되면 비로소 관습법, 즉 불문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관습법 이전의 관습이나 관행은 법이 아니라는 것이고, 특히 관습에는 어느 정도 규범성, 즉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으나 관행의 단계에서 그 관행을 따라하느냐 아니면 다르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책임이 된다. 따라서 관습이 법이나 사회적 기준에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사람의 생각은 그 관습에 따랐을 것이라고 해석되는 정도의 규준성은 있는 것이나, 관행은 그러한 기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 지도층이라는 분들이 어떤 잘못으로 비난을 받았을 때 기자회견이나 청문회장에서 당시는 그게 관행이었다는 변명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녀의 교육이나 주택 청약권을 얻기 위해서 위장전입을 해도,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이중계약서를 써도, 심지어는 민원인들로부터 명절 떡값을 받아도 관행이었다고 우긴다. 그런데 그 준거가 만약 법이었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고, 관습이라 해도 따르지 않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관행이었다고 대답한다면 자기 말고도 몇몇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거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므로 용서받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차라리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백배는 더 나아 보이는 것이다.(2009. 8. 20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