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세워라

    80년대 외국에서 잠시라도 지내본 사람은 당시 우리나라를 외국 매스컴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화염병과 최루탄, 바로 이 두 가지가 ‘동방의 등불’ 코리아의 상징으로 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여러 단계의 민주화를 거쳐 오늘날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나름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적했듯, 한 때 케냐보다도 못 살았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에서 10위 내외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고, 몇몇 분야의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해진다. 이렇듯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모자랄 것이 없는 듯 보이는 이 나라에서 정치나 민주화 수준은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소위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공동으로’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더니, 여당이 법안을 직권상정한다고 하자 야당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선언하였고, 한 자동차공장을 점거한 노조와 회사와의 갈등이 이미 공권력의 문제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용산 참사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온 사회가 정치권과 공권력과의 투쟁의 장으로 바뀌어버린 듯 한 착각도 느끼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는 누가 더 나쁜가 논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국민이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는 국민이 주권자이므로 국민의 의사가 통치자의 의사에 비하여 우월하다고 주장하나, 이는 하나만 알고 하는 소리다. 국민주권주의에 있어서의 국민은 개개의 시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국가를 구성하는 전체로서의 국민을 상징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의제(代議制)에 의해 국민이 대통령이나 의회에 권력을 부여하고 난 후에는 개개의 국민이 통치에 대해 간섭하기는 극히 어렵다. 더군다나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권력에 대항하다가는 처벌만 따라올 뿐이다. 그것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나라일수록 시민과 공권력의 다툼이 격렬하고, 공권력이 시민과 맞서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는 어느 쪽이 옳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적어도 정치적 선진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을 지키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도 생기게 된다. 어차피 공권력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으니 적절히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더라도 어떡할 수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때문에 법이 추락한 사회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부조리가 만연하게 되고, 결국은 사회가 퇴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아무리 전자제품을 잘 만들어도, 자동차 성능이 좋다고 해도,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것은 하나의 ‘기현상(奇現象)’일 뿐이라는 것이고, 어떤 이는 이들 회사는 한국의 기업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한다.
    결국 법을 세우지 못한다면 사회의 질서는 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할 것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폭력적인 시위로 우리 모두에게 피해가 오는 것은 피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발단이 시민들이 아니라, 이를 정권이 자초하였다는데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기 때문에 권력자들에 대한 심판을 위하여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전에 우리는 이 정부가, 국회가 지금까지 한 것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집권 초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출범한 이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 정부가 국민 앞에서 말 한 것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정치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이 의심하고 있는 바이다.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면서 대기업과 부자 중심 정책이 남발되고, 온 국민이 반대하는 운하를 파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정책은 끊임없이 발표되었다. 그러니 대통령의 발언을 누가 믿는다는 말인가.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밝히고 깨끗하게 정책을 펴는 것이 공권력의 위신을 세우고, 법을 세우는 길이다. 정말 소신을 가지고 펴는 정책이라면 정정당당하게 국민들에게 밝히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가 구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정당한 정책도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정책을 펴면서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자 원하는가. 이제 또 국민들이 ‘묻지 마 투표’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 착각이다. 국회의원들조차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2009. 7. 23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