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법원 사태를 보며

    요즘 민주국가들은 모두 국가권력을 분립시켜서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분립을 토대로 해서 국가권력이 행사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 3개의 권력은 서로 간에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통하여 권력행사의 중심을 유지함은 물론, 가장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균형이 무너져서 상호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국가인가의 여부는 이와 같이 권력을 통제하고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데, 허울만 민주국가임을 내세우는 나라들은 그 속을 들어다보면 권력이 집중되어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민주국가에서 법원의 위상은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하여 못할 것이 없다. 비록 행정부에 비하여 구성원의 수도 적고, 국회와 비교하면 국민들로부터 직접 권력을 양수받지 못했다는 점이 취약점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미국의 예에서 보듯 오히려 가장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받을 뿐 아니라, 의회의 제정법률에 대해 위헌선언을 하는 등 선언적 내지 실질적으로 그 우위가 인정되어 있다. 이러한 우위는 법원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할 수 있는 최종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위상을 가졌던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으로는 재판 업무는 통치자의 고유 분야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요즘도 행정부에 일정 부분이 귀속되어 있다. 우리 법원도 대법원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거나, 예산회계가 행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등 옛날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법원의 위상은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법원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법적 피해를 입게 되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은 당연히 법원이 된다. 그래서 법원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잘못을 할 수 있지만, 법원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에 법원이 좀 잘 못하는 일이 있으면 심하게 비난을 하는 일까지도 생긴다. 이러한 비난은 다른 부처의 공무원들에 대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국민들이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그 비난은 더 맵다. 그런데 그러한 비난은 미워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젠 안 보겠다 그런 뜻도 아니다. 지난날의 행적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 잘하라고 하는 채찍이다.
    요즘 보도를 보면 모 대법관이 법원장 시절에 한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가 문제가 되어 법관들이 회의까지 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 대법원 스스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시정하겠다고 한 것인데, 그것이 영 마땅찮았던 게다. 그런데 문제는 법원의 높은 분들이 회의에 참가하는 법관들에게 전화를 하네, 담화를 발표하네 하고 바쁜 모양인데, 이분들에게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지 안 보이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단독판사들이 전국적으로 회의를 가지고 이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을까. 흔히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하지만, 왜 젊은 법관들이 자신들의 선배이자 상급자인 대법관의 거취를 문제 삼고 있을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의 발단이 된 대법관 한 분의 거취가 아니다. 그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봉책으로 덮으려고 한 짧은 생각이 더 문제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문제를 인정하고 앞으로 재판의 독립을 저해하지 않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강구해서 발표했더라면, 사법부가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일에 책임이 있는 분들은 깨끗하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또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머리를 짜내어 국민을 안심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법원을 신뢰하고, 마지막에는 법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국민을 위해 지금 법원이 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이다.(2009. 5. 21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