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다구요?

    대구 사람들은 말이 없다. 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가게에 가도, 식당에 가도, 택시를 타도 “어서 오세요” 하고는 대부분 무표정하게 손님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대형 마켓이나 백화점도 다르지 않다.
    장면 #1.
    유명한 어느 식당. 퇴근 후 저녁을 먹거나 친구들과 한 잔 하려는 사람들로 거의 만원이다. 어느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어떤 손님이 종업원을 부르기 위해 호출기를 눌렀다. 반찬이 떨어져서 더 달라고 하려는 것인데, 종업원이 금방 오지 않는다.
    한 참 있다 나타난 종업원이 뭐라고 했을 것 같은가. 늦어서 미안하다, 바쁘니 양해해 달라, 그런 사과는 전혀 없이, “왜 자꾸 바쁜 사람 불러?” 하는 표정으로 다가와서,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고는 반찬그릇을 가져와서는 던지듯이 놓고 사라진다.
    수 년 전 미국에서 외식을 하는데, 종업원이 연신 생글거리면서 뭐 도와줄 것 없는지, 맛은 있는지 하도 수다스럽게 물어봐서, “아, 이 친구 팁 받으려고 그러나보다.”고 생각하다가, 도저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글거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대답은, 웃지 않으면 사장이 바로 해고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그런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장이 그렇게 종업원을 다그치는 이유는 친절하지 않은 가게에 손님들이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업계의 사람들이 저 정도라면 일반인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장면 #2.
    아침 출근 길. 왕복 6차로의 교차로에 수 십대의 차량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초록 신호로 바뀌어 출발하려는 찰나, 전방에서 질주해오던 승용차 한 대가 급하게 U턴을 했는데, 한 번에 돌지 못해 많은 차량이 그 뒤에 멈춰 섰다.
    여기서 U턴을 한 차량은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이다. 이 차량의 운전자는 위험한 운행을 했을 뿐 아니라 다른 차량의 운행을 방해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이러한 운행은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엄하게 단속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누구도 이 운전자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대구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낯을 가려서 그런 것 같기고 하고, 전통적으로 양반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적 특성상 남과 언쟁하는 것을 삼가는 정서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하기 힘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남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못하게 하지 않으니 이런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되어버렸다는데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 아니면, 남에게 쓸 데 없이 참견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하면 나오는 반응은 항상, “네가 뭔데?”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을 전혀 안 하고 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는 더 많이 더 자주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중요 사항은 모두 이런 얘기 중에 결정된다고도 한다. 이러니 대구에서 회의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또 한 편 이런 얘기 중에는 남들에 대해 거의 막말을 하는 사람이 예상 외로 많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남을 험담하지는 않지만, 뒤에서 끼리끼리 쑥덕거리는 것이다. 아마도 앞에서 시원하게 말을 못 하니, 자신이 믿을 만 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속내를 털어놓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런 말은 꼭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런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흔히들 대구를 배타적이라거나, 불친절한 도시라고 하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데는 충분히 근거가 있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 불이익은 대구로 돌아온다. 우리끼리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제대로 평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제육상경기대회 외에도 많은 국제적 행사가 치러질 것이고, 그러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어려운 경제난국을 타개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대구를 찾아주고, 대구를 좋게 생각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해서는 절대 해결이 안 된다. 우리 스스로 변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잘 살게 되는 길이다.(2009. 5. 7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