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지 못하면

    요즘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자금수수에 관한 수사 얘기가 이슈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중 얘깃거리가 된 것 중의 하나는 영부인이 검찰에서 비서관을 감싸기 위해 스스로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 진위나 저의는 별문제로 하고, 이 얘기를 듣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늘 들어오던 말 중 하나는 우리나라는 국토도 좁고 자원도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이었다. 물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잘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하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교육열이 높고 천성이 부지런한 민족이어서, 우수한 인적 자원이 토대가 되어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지금이 있기까지 엄청난 땀과 수고가 필요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살기는 좋아졌다고 해도 경제가 어렵다보니 여기저기에서 힘들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우리 사회가 사람을 너무 경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성공신화를 이룬 얘기를 들어보면, 결국은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리더와 내 일 네 일을 가리지 않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 사원의 합작품이라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손쉽게 얻어지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회사 대표가 자신의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은 당연시할 수 있다. 그러나 종업원이 나의 회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물론 회사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될 것이라는 말에 틀린 것은 없으나, 보통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받는 만큼 일하게 되는 것이다.
    IMF로 지칭되는 외환위기 이후, 일반화된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 전에는 회사에 입사하면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되었고, 그래서 2,30년 전만 해도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되는 것조차 특이한 사례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가 다니는 회사는, 자기가 사장이 아니어도 ‘우리 회사’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 종업원에게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하라고 했다가는 욕이나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러한 것은 굳이 큰 회사가 아니더라도 두세 명이 일하는 작은 가게나 식당, 공장이 다르지 않다. 주인이 마음을 주지 않는데 종업원이 충성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내가 들은 얘기 중에는 더한 일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지방 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장과 가까운 어느 사원이 그 일을 하다가 자신에게 전권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일을 중단해 버렸다는 것이다. 회사의 명운이 걸릴 정도로 중대한 건이어서 몸이 단 사장은 다른 사원들 몇 명을 뽑아 일을 맡겼는데, 몇 달을 밤잠을 설치며 애를 쓴 끝에 수주에 성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개시되자마자 일을 중단했던 그 사원이 친척 어른을 동원해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프로젝트를 가로채다시피 해갔는데, 그 와중에서 몇 달 동안 고생한 이들이 엉터리로 계획을 했다고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 말뿐만 아니라 심지어 말 못할 불이익도 받았다고 하는 그 사람은 그 회사를 위해 이제 더 이상 자발적으로 봉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자신은 그래도 사장은 자기 고생한 것을 알고 있겠지 했지만, 후에 계획이 잘못 수정되어 회사가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되었는데도 자신들에게는 말 한 마디 없다고 섭섭해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이렇게 돌아갈 리는 없겠지만, 어차피 이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갈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다른 사람을 쓰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 위의 사장이 이 직원에게 일을 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한 번 잃은 신뢰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비록 험한 일의 와중에 나온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감싸 안았다는 사람이 부러워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 (2009. 4. 23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