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같은 말 좀 하고 삽시다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생물들 중에서 사람만큼 자신의 의사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식물은 물론, 어떤 동물이 자신들끼리 의사를 교환한다고 해도 그것은 극히 제한적일뿐이다. 사람은 대화를 하는 것을 넘어서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만들며 높은 수준의 사유(思惟)에 바탕을 둔 철학적 담론(談論)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의 바탕은 궁극적으로 말이며, 또한 말은 글로써 표현됨으로써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후세의 사람이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기틀이 되기도 한다.
    법에 있어서도 말은 참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선 법률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말은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된다. ‘행위’라고 하니, 동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이는 의사표시를 일컫는 것이다.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역시 말로 하는 것이다. 계약을 하는 것도 법률행위의 한 부분인데, 이때 계약자 쌍방이 말로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중요한 계약은 당연히 문서로 하게 되므로, 말로 계약을 하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게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먹는 것도 법적으로는 분명히 계약이라고 하는 것이고 보면, 이때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문제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계약을 하는 기본 모습이 의사의 합치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말에 따라서는 그 말을 한 사람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형법상 말이 죄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예가 된다. 내란 목적의 선동(煽動), 국기 등의 비방(誹謗), 위증, 협박, 명예훼손, 모욕, 사기, 공갈죄 등 얼핏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더라도 말로 짓는 죄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물론 말로 짓는 죄가 이외에도 많이 있고, 또 이들 죄를 말로만 짓도 것은 아니지만, 법이 이렇게 사람의 말에 간섭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 말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가 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 입이 무척 험한 사람을 본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서 경계하고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개 본인은 자신이 잘난 줄 안다. 자기가 뭐라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아무도 그 사람의 인격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입만 험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사납게 군다고 믿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법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말의 중요성이란 대단히 강조되고 있다. 이를 잊어버리면 때로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하기도 하는데, 친한 친구나 가족에 대해 마음 놓고 얘기하다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과 얘기를 하다가도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해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에서처럼 나쁜 말보다는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어린이에게나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칭찬이 중요하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왔냐고 화를 내면, 환자는 할 말이 없다. 그 병이 축농증이거나 충치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암에 걸린 환자에게 그렇게 대한다면 그 환자는 이제 끝났구나 하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말에 진심을 담는 것이다. 앞에서는 칭찬을 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 상대방이 누군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생각나는 대로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표시가 나게 마련이다. 그런 말은 자신의 모든 행동거지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결국 본인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반면에 진심을 담아 말을 하면 상대방도 진심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진심이 없는 말, 생각 없이 한 말, 남에게 해악이 되는 말은 “말이 아니다.” 이제 부터는 제발, 말 같은 말만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2009. 4. 9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