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모두 애국자다. 엊그제 끝난 WBC는 비록 최종 결과는 아쉬웠더라도 다시 한 번 우리 국민들을 한 마음으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평소에는 스포츠와 거의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TV 앞에서, 그도 안 되면 라디오라도 틀어놓고 “대∼한민국!”을 외친다. 젊은이들은 DMB를 통해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문자중계를 보면서 선수들의 한 동작 한 동작에 신이 나고, 안타까워한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로 한국 국민들의 응원은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열정적인 응원은 모두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게다. 내 나라가 잘되는 것을 우리 모두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응원함으로써 정말 잘된다고 믿는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그래서 왠지 적극적으로 응원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데 비단 스포츠뿐일까. 고구려나 발해 같은 역사 문제에서도 그랬고, 독도나 이어도 같은 영토 문제가 나와도 애국심은 치열하게 표현된다. 어떤 때에는 좀 지나치다 할 정도도 없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말 우리 국민들은 애국심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애국 얘기가 나오니 갑자기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공익광고 하나가 오버랩 된다. “내 차가 더러워질까봐 대한민국에 버렸습니다.” “내 집에 냄새날까봐 대한민국에 버렸습니다.” “내 배낭이 무거워질까봐 대한민국에 버렸습니다.” “내 돈 드는 게 아까워 대한민국에 버렸습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말자는 이 광고는 마지막에 그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대∼한민국!”을 외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이러한 이중성은 비단 쓰레기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고 가다 속도위반으로 단속되었을 때, 또는 주차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웠다가 주차위반으로 단속되었을 때 우리는 무어라고 하는가. “재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어째서 법을 위반하여 단속되었는데, 그에 승복하지 못하고 재수 타령을 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법에 대한 경시(輕視) 현상을 본다.
    법을 위반하여 단속된 것이 재수 없는 것이라면, 법을 위반하였지만 단속되지 않았을 때 “재수 있다”고 해야 할까. 본래 재수(財數)라는 것을 재물에 대한 운수라고 하여야겠지만, 그렇게 곧이곧대로 보지 않더라도, 법을 위반한 것에서 어떻게 재수 있는 일이 나올까. 법을 위반하는 것을 너무나도 대단하지 않은 일로 보거나, 법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서 위반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단지 법을 지켜야 한다고만 하면 될 것인가. 지금까지는 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지킵시다 이렇게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까. 위에서 든 예가 너무 범상한 것이어서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얘기해보자. 생활보호대상자의 지원금 수억 또는 수십억을 횡령한 공무원, 학교 예산을 1억 넘게 횡령한 교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일한다고 큰소리를 쳤을 것이며, 학생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도 걸리지 않으니, 자신은 재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 말고도 요즘 이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분들이 검은 돈을 받았다고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었던 때에는 재수가 있다가, 정권이 바뀌니 재수가 없어진 것인가.
    여기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법이 국민들의 이성적인 합의 위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법은 누구에게나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법을 위반하고도 “재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을 위반한 것을 알고도 지위가 높아서, 내편이어서 봐주었으리라는 생각은 결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을 위반하면 어떤 경우에도 처벌받는다는 것이 더 이상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당연한 것으로 되는 날, 진정한 법치(法治)는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는 애국하면서, 뒤로는 “재수 있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2009. 3. 26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