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법과대학에서 주로 하는 교육방법은 일방적 인 이론주입식이다. 교수는 50분 내내 학생들을 상대로 법학의 이론을 얘기해주고 학생들은 그로부터 강의를 듣고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교수가 강의할 때에는 개념이나 학설만 얘기해주는 것은 아니고, 실무의 동향이나 판례의 태도 등 가급적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 교과과정에는 연습과목이 있어서 이렇게 이해한 이론을 사례에 도입하여 직접문제해결을 하는 기회도 가져보고, 모의재판이나 법률봉사활동 등을 통하여 스스로 경험을 쌓기도 한다. 교수들로서는 가급적 학생들이 교과서와 강의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교양서를 읽히기도 하고, 판례연구, 법원의 방청 등 다양한 과제를 학생들에게 주기도 한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법률 교과서는 상당한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거의 대부분의 교과서는 그 과목의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최근의 내외국의 학설동향은 물론, 판례의 태도 등 정말 없는 것이 없다. 학생들이 알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변함없는 것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태도이다.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강의실에서 교수에게 얻으려고만 한다. 국민학교에서부터 강조하는 예습복습은 해오는 학생이 거의 없다. 판례라든가 논문 등 관련자료를 조사하여 수업준비를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교과서 라도 제대로 몇번 읽어오는 학생들도 드문 상황이다. 그러니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듣는 내용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공부를 해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이른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인데, 이들은 미리부터 해당과목에 대하여 나름대로 몇번 정도는 교과서를 독파한 실적을 가지고 있다. 이 학생들은 예습을 해오지 않아도 이미 어느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학생들은 강의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지식은 고시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의 습득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강의에 들어오는 것은 비경제적일 수도 있고,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노력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교수의 강의는 그 분야에 지식이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학점을 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정해진 범위야 얼마 되지 않으니, 그 정도야 한두주 정도면 시험지를 매꾸는 정도로는 마스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짝지식은 금방 잊혀져 버린다. 또 시험에서 제외된 부분은 아예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법률지식이라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것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학생들이 무서운 것은 이들은 이러한 단편적이고도 불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 불과하지만 스스로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학생들이 졸업하면 이른바 법학사학위를 받는다. 강의실에서 제대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졸업하고, 고시생들은 교과서에서만 얻은 지식을 가지고 졸업한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가지고 졸업한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법대를 4년이나 다녔고, 학점도 제대로 받았다. 그런데 남에게 제대로 조언도 해줄 수 없고, 하다못해 이웃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장 하나 써달라고 해도 그것도 만들어줄 수 없다.
   이들이 이른바 "소장도 못 쓰는 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대학의 법학교육이 잘못 되었다는 의미도 되고, 학생에게는 제대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질책하는 말도 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잘못된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데 법대에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왜 "소장도 못 쓰는 놈"일까? 소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법학교육의 표상일까?
    대학에서 가르치는 법학과목은 거의 수십개에 달한다. 흔히 얘기하는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행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과 같은 소위 6법 외에도 법철학, 법사회학, 법제사, 법학통론, 법학원강, 무체재산권법 등등을 비롯하여 많은 과목이 개설된다. 그런데 소장을 쓰는 법에 관한 강의가 있는 과목은 민사소송법이다. 즉 소장도 제대로 못쓰는 놈은 법학, 특히 민사소송법에 대하여 제대로 못배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 민사소송법에서는 소장 뿐만 아니라, 갖가지의 권리실현방법이나 절차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든다면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더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갚지 않는다. 이 때 어떻게 하면 가장 빨리 가장 경제적으로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적게 상하게 하면서 이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민사소송법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면 어렵잖게 의뢰인에 대하여 몇가지 질문을 한 후에 가장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흔히 변호사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일반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들이 비교적 쉽게 법률상담의 상대역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변호사이기 때문이겠지만,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법대 교수들 조차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민사소송같은 절차법의 강의는 민법에 비하여 덜 중요하고 그런 과목은 판사나 변호사들에게 맡겨도 된다라는 생각을 의외로 많은 교수들이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전국 수십개의 법과대학 내지 법학과에 근무하는 민사소송법 전임교수의 수가 손에 꼽히는 지경이라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심지어 모대학에서는 민사소송법교수채용의 적임자로 학과에서 추천한 사람을 총장이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사위원회회부를 거부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까지 들은 적이 있다.
   교수를 뽑는데 왠 변호사? 대학을 법률회사로 착각한 것일까? 이들의 생각은 민사소송법이라는 과목이 실무적 성격이 강해서 변호사라면 더 좋지 않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말도 안되는 논리이다. 사회과학 중에서 법학만큼 실무적 성격이 강한 과목이 또 없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법학 중에서 법철학이니, 법사회학, 법제사 등등 학문적 성격이 보다 강한 과목도 없지 않지만, 중요과목으로 치부되어 사법시험에도 부과하는 과목들은 무엇보다도 실제로 그대로 이용되는 과목들이다. 재판에는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이들과목에 대한 지식은 꼭 필요하다. 때문에 법률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유명저자의 교과서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헌법, 민법, 형법이 대학과 강의실에서만 이용되는 과목인가 말이다. 이들 과목도 민사소송법과 마찬가지로 법학자에 의하여 연구되어 그 업적이 실무에 이용되는 것이다. 민사소송이라고 하여 법학자가 연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여타 과목이라고 하여 법학자의 전유물도 아닌 것이다. 민사소송법에 변호사가 낫다면 민법이나 형법, 헌법에도 변호사가 더 낫다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박사학위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변호사자격을 가지고 있고, 실무를 다루어본 사람이 정말 학자가 되기 위하여 수련을 한 연후에 실무경험이 있는 학자로서 연구와 강의를 담당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요즈음 많은 판사, 검사, 변 호사들이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하여 籍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실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출한 학자들도 많고, 법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상 이들의 진출은 상당히 바람직하고 또 실제 이들에 의한 괄목할 만한 성과도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많은 수의 실무자들의 수업태도는 극히 불량하다. 강의에 출석하지 않는 것은 물론, 리포트도 대충대충, 발표나 토론에 참가하여 교수나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일조차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실정이 변호사자격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태도이 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장차 학문을 할 사람이 아니므로 과정이나 적당히 마치고 학위나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돈이 걸려 있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부수적으로 하는 대학원은 학교에서 당연히 사정을 봐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이들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 이유는 현재 대학원학생들이 급감하고 있고, 또 이들은 사회적 지위도 있을 뿐 아니라 장차 취직걱정도 할 필요없는 이른바 "부담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 이들에게는 무의식적인 특혜조치가 주어질 수 밖에 없고, 이들은 알게모르게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학생일수록 학위논문이라고 하는 것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저 겨우겨우 통과만 시켜주면 감사하겠다는 정도이다. 때문에 꼼꼼한 지도교수가 손을 본 논문 초고는 全面이 벌겋게 칠해져 있기 마련이다. 요컨대 처음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실무자가 학위를 받았다고 하여 그가 학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검증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혹여 대학 강단에 섰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자신의 직업에 대한 도피처로 대학을 생각했다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학생들이 불쌍하다.
   학자가 할 일과 실무자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