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명

    얼마 전에 또 연쇄살인범의 얘기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더니,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와 창녕 화왕산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하였다. 사건의 내용은 둘째 치고,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게 되어, 비단 가족친지가 아니더라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데 대해 분노하고 책임 질 사람을 가려내어 잘못이 있으면 처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무래도 법이 보호하는 이익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생명이라고 본다면, 남의 생명을 빼앗거나 사고라고 해도 남이 죽게 되었을 때 그에 책임 있는 사람이 가장 큰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은 분명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의 입장에서 사람의 생명은 참 아이러니하다. 한참동안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한 예가 없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어쩌면 자가당착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수사나 재판이 잘못되어 무고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아 집행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저러한 문제 때문에 사형을 폐지하자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여러 해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되니 흉악범이라도 죽을 걱정이 없게 되어, 강력범죄가 늘어났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아졌는데, 이러한 얘기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서독이 사형을 폐지했을 때, 동독에서 간첩을 대거 보낸 일이 생각나게 한다. 동독에서 간첩교육을 시키면서, 잡히더라도 사형을 폐지한 서독에서 죽을 리는 없으니 참고 기다리다 보면 죄수 교환 등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간첩들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법의 입장에서 사람의 생명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지는 것인데, 이때 모든 법이 다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법 쪽에서는 사람의 권리의무를 중심으로 생각하니까 대체로 모체에서 분리된 때로부터 심장이 멈춘 때까지를 살아있는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사이에는 권리를 가지고 의무를 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에서는 모체의 진통이 시작된 때로부터 사망한 때까지를 기준으로 하는데,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를 살해하면 낙태죄로 처벌받지만, 산통이 시작된 이후에 그 아이를 살해하면 영아살해죄 또는 살인죄로 처벌하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형법상 사망시기에 관해서는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정지되면 사망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입장이나, 장기를 이식하기 위하여 뇌가 작동을 멈춘 때를 사망한 것으로 보자는 입장이 의료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 심장이 움직이더라도 뇌는 멈추었을 경우에 어차피 살아날 수 없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므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통적 법의 입장은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이 살아 있느냐, 이미 사망했느냐를 문제 삼지 생명을 어떻게 해라 하지는 않았다. 죽고 사는 문제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신(神) 또는 절대자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게 해달라는 소송에서 법원이 이를 허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까지는 인공호흡기를 떼면 살아있는 사람을 죽게 했다고 해서 처벌하던 법원이 생각을 바꾼 모양이다. 물론 아직 대법원에 상고할지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고, 또 상고가 된다면 최종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만, 1심과 2심이 같은 재판을 한 것만 보더라도 시대의 변화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법원은 이러한 존엄사를 시행하는 조건을 엄격히 제시했고, 또 혹시라도 남용될 경우에 대비해서 인공호흡기 외에 물이나 영양분의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조치를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달리 쓸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서다. 노인들이 유기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고, 쓸쓸히 혼자 살다 돌아간 지 한 참 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드물지 않은 세상에서,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이제 곧 금지가 풀린다고 해도, 아기 초음파 시술을 아들 낳기 위한 성별감별 용도로 쓰던 나라에서 하는 걱정이다.(2009. 2. 12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