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물론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사람 말고도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이나 식물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사람만큼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문자를 통하여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얘기를 할 수 있다.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과학의 발전이나 철학, 문학도 결국은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말로써 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말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해결을 하려고 할 때 최종적인 결론은 반드시 대화로 풀게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편지나 전화와 같은 것보다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말의 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못 본 친지에게 “밥 한 번 먹자”거나, “술 한 잔 하자”는 말은 사실상 “당신과 깊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과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벼운 얘기를 부담 없이 하려고 할 때에는 “차 한 잔 하자”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실컷 대화를 통해 의사를 교환했는데, 그 때 나온 얘기가 거짓이었다면 대화는 의미가 없다. 이러한 때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간에 감정만 쌓일 뿐이다.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진실성을 담지 않고 입에 발린 말로 현장만 모면하려고 하다가는 언젠가 들통이 나서 큰 코를 다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왕왕 있는 일이다.
    법에 있어서 진실성의 확보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냥 허허 웃고 넘길 사안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 법과 관련이 되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해(利害)와도 관계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실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말로 승소판결을 받으면 상대방이 억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위증죄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법이라고 해서 항상 사람들이 진실만을 말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범죄자는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민사재판에서도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 물론 이때 처음부터 진실되게 처신하는 것보다는 불리한 재판을 받게 될 수 있고, 또 법전의 어디에도 이들의 거짓말을 정당시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증거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은 당사자의 거짓말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불리한 때에는 거짓말이라도 해서 빠져나가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증거로 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를 가지고 참과 거짓을 가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경력이 오래된 수사관이라고 해도,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법관이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당사자의 거짓에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요즘은 과학의 발전으로 증거의 조작도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진실발견은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 증거가 있다고 해도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어야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도 의문이 될 수 있다. 증거가 믿을 만 해도 그것과 사실 사이에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심을 품자면 한이 없다.
    결국 이럴 때 승리하는 것은 상식(常識)이다. 법관이 증거를 통해 확신을 가지고, 의심하는 자에게 침묵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그 판단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어느 것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법적 문제가 아닐 때에는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한 가수의 학력을 두고 벌이는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것이다.(2010. 10. 22자 대구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