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을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에게 조국을 선택할 자유는 없다. 요즘은 이민을 가기도 하고, 또 불가피하게 외국에 살다가 그 나라에 귀화(歸化)하여 국적을 바꾸기도 하지만, 국적을 바꾼다고 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이렇게 국적을 바꾸는 것이 허용된 것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 국적을 바꾸자면 법이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재일동포들 중 많은 수가 일본에 귀화할 때 얻을 수 있는 온갖 혜택을 뿌리치고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분들에게 있어서 일본에 사는 것은 참으로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에서 나온 일이겠지만, 조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식이 우리 국적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흔히들 외국에 나가면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그다지 대단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모처럼 우리나라가 거론되거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래도 대다수의 나라에서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알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것보다 우리나라의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내가 하는 행동이 나 하나의 잘못으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잘못으로 비칠 수 있다고도 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국가를 대표하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월드컵 대회와 같은 국제대회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회를 하면서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이건 그렇지 않던 사람이건 막론하고 거리에 뛰쳐나가거나, TV 앞에 앉아서 대한민국 대표 팀을 응원한다. 우리 선수가 골을 넣으면 내가 한 것처럼 기뻐하고, 상대팀에 밀리면 가슴을 치면서 아쉬워한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로 묶여 너나없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고 있어야 할 새벽 서너 시에 애가 쓰여 응원을 하다가, 충혈된 눈으로 출근하여 직장에서 꾸벅꾸벅 졸아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모두 우리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이런 대회에 대표로 선발되어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또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너무 잘하려다 보면 또 생각지 못한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실수가 문제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결정적으로 골과 연결되면 당사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인에 대한 험담도 모자라 주변 사람들의 홈페이지에까지 쳐들어가서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남겨놓은 자들도 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이야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오히려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도록 격려해서 다음에 만회하도록 하여야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 번 실수했다고 욕설을 해대면 누가 최선을 다해 뛸 것인가 말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나라이고 우리의 나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내 한목숨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돌격할 수 있는 것이다. 6·25때의 우리 아버지, 형님들이 그러했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세계에 이름을 떨치면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이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품격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잘 살지 못하는 국가의 국민은 외국에서 좀 실수를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나라의 국민이 잘못을 하면 돈만 많고 품격은 없는 나라로 매도될 수 있다. 그런 나라들은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산다.
    우리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우리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길은 우리나라가 가진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고, 이는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다.(2010. 06. 24자 대구일보)